6.1Km 2024-06-21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181번길 25
다인매운등갈비찜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다. 한옥으로 지어져 외관에서 고풍스러운 멋이 풍긴다. 예스러우면서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매운맛, 중간 맛, 순한맛으로 나누어져 있는 매운등갈비찜이다. 이 밖에 다인삼겹살, 된장찌개, 치즈볶음밥, 계란볶음밥 등이 준비되어 있다. 경주IC에서 가깝고, 주변에 첨성대,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교촌한옥마을 등 경주의 유명 관광지가 즐비하다.
6.1Km 2024-12-09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경주향교 인근 인왕동 고분군에 있는 내물왕릉은 신라 제17대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으로 401년에 조성되었다. 밑지름 22m, 높이 5.3m의 봉토분으로 밑면 주변에는 자연석의 한 모서리가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무열왕릉처럼 그 안에 별도의 호석이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에는 내물왕의 장지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삼국유사>에 첨성대 남서쪽에 있다고 기록되었으며 현 위치와 일치한다. 1969년 8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내물왕은 김씨 왕으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김씨 성에 의한 독점적 왕위계승을 이루었다. 마립간이란 왕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중국 전진과의 외교관계를 통해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이 침입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하였으며,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6.2Km 2024-07-31
경상북도 경주시 교촌안길 31 (교동)
054-777-6302
교촌버스킹은 경주시와 (재)경주문화재단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월정교의 야경과 함께 감미로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연으로, 고즈넉한 한옥이 모여있는 경주교촌마을의 교촌홍보관 앞마당에서 8월 2일부터 24일까지 4주간, 매주 금요일, 토요일에 진행된다. 이번 공연에는 6월부터 한 달간 전국공모를 통해 선정된 14팀이 출연한다. 선정된 팀들은 뛰어난 실력과 특색을 갖춘 팀들로, 만 39세 이하의 청년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젊고 트렌드한 감성으로 재즈, 보사노바, 클래식, 퓨전국악, 융합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인다.
6.2Km 2025-01-17
경상북도 경주시 원효로 141
054-742-8502
141미니호텔은 여행자와 비즈니스 출장자를 위한 소형 숙박시설이다. 모텔 수준의 숙박비로 호텔의 품격과 편의성을 누릴 수 있도록, 북카페, 갤러리, 보드게임룸, 비즈니스센터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근에 대릉원, 동궁과 월지, 첨성대, 불국사 등 주요 관광지가 있으며, 금리단길과도 가깝다. 또한 경주시외버스터미널과 6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6.2Km 2024-08-07
경상북도 경주시 보불로 58-4
고색창연은 경북 경주시 마동에 자리 잡고 있다. 대표 메뉴는 한우 떡갈비를 비롯해 된장찌개, 김치전, 두부김치 등 여러 가지 먹거리가 나오는 한우 떡갈비 정식이다. 이 밖에 돼지 떡갈비 정식, 반반 떡갈비 정식, 한우 떡갈비 돌솥밥, 돼지 떡갈비 돌솥밥, 반반 떡갈비 돌솥밥 등도 판다. 음식점은 남경주 IC와 가깝고, 주변에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블루원디아너스 CC가 있다.
6.2Km 2025-03-13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고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자는 뜻으로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 형태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인 듯하다. 삼국통일 당시의 전투 장면 등이 여러 개의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도중 잠시 호국영령을 참배하고 다리 쉼을 원하면 너른 잔디밭에서 쉬는 것도 좋을 듯하다.
6.2Km 2024-06-11
경상북도 경주시 교촌안길 27-20 (교동)
경주향교는 경주교촌한옥마을과 경주최부자댁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가 교촌, 교리, 교동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향교 때문이다. 이 자리는 천년의 배움터로, 신라 신문왕 2년(682) 처음 세워진 국학이 있던 곳이다. 경주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23년(1492)에 서울의 성균관을 본떠 고쳐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과 전사청을, 선조 37년(1604)에 동무와 서무를 짓고 광해군 6년(1614)에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재건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은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배치구조를 보이고 있다.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에 해당되어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봄, 가을 전통적 유교제례의식인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또 경주향교에서는 국궁, 떡메치기, 다도 등의 전통문화체험과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명륜당에서 전통혼례를 무료로 체험하는 시연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6.2Km 2024-06-12
경상북도 경주시 교촌안길 19-4
0507-1390-3408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던 궁터에 조선시대 경주 최부자가 터를 잡은 이곳 요석궁은 일제강점기때 나라를 잃고 울분을 달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였으며 최부자 형제들 그 자신이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어 독립자금을 대고 해방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 함으로써 모든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당시 최부잣집을 찾았던 손님들에 의해 최부잣집의 전통 가정음식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지금도 각국대사와 전직 대통령, 각계 유명인사들이 요석궁을 찾아 전통 최부자 가정식을 맛보고 있다.
6.2Km 2024-12-06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63-1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교량(橋梁)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고증을 거쳐 2018년 4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1984년 11월 26일부터 1986년 9월 8일까지 진행된 두 번의 복원 설계를 위한 자료수집과 발굴조사를 통해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공사로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의 교량 복원이 완료되었다. 2016년 4월부터 시작된 다리 양 끝의 문루(門樓) 2개 동을 건립하는 공사를 진행하여 2018년 4월 준공되었다. 문루(門樓) 2층에는 출토된 유물과 교량의 건축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전시관을 설치하여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 과정 관련 영상도 상영한다. 경주시의 신라 왕경 8대 핵심 유적 복원 정비사업 중에서 첫 번째로 완성된 월정교 복원 사업은 이후 진행될 황룡사, 신라왕궁, 쪽샘지구, 신라방 등의 복원 정비 공사에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6.2Km 2025-03-11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
문화관광과(관광홍보) 054-779-6079
관광안내소(경주역) 054-772-3843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 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