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고려궁지

고려궁지

54616     2024-04-08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고려 고종 19년에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가 강화로 옮겨졌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는 규모는 작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병자호란 당시 강화성이 청군에게 함락된 사실이 있으며, 그 후 고려 궁터에는 조선 궁전건물(장령전, 행궁, 만령전, 봉선전, 외규장각, 척천정, 세심재 등) 및 유수부 건물들이 있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 시 프랑스군에 의해 건물 등이 소실되고 지금은 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1977년 보수 정화되어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국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갑곶돈대

갑곶돈대

38635     2024-04-08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18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 (甲比古次)라 부른 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 터에 새로이 옛 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광성보

68859     2024-04-08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해안동로466번길 27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가 광성보를 설치하였고 이후 1679년(숙종 5)에 만들어진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를 관할하였다. 1745년(영조 21)에는 완전히 돌로 성벽을 고쳐 쌓으면서 [안해루]란 성문을 설치했다.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한 후 강화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하기 전 포격으로 강화 광성보를 초토화시켰다.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무한 바 있던 어재연 장군과 조선군은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맞서 싸우다 장렬히 순국했다. 미군은 이 전투를 끝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에도 광성보에는 신미양요 때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곽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광성보 안에는 광성돈대,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 장병을 모신 신미순의총,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고,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있다.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신미양요 때 장렬히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무명용사를 기리는 광성제가 봉행된다.

서울 정릉(신덕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31527     2024-04-04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 강 씨의 묘소이다. 태조는 고려의 풍습대로 향리와 서울에 각각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강 씨는 서울에 있는 부인이었다. 고향에 둔 부인 한 씨는 태조 등극 전에 죽었고, 등극과 더불어 왕후의 자리에 앉은 것은 현비 강 씨로서 방번, 방석 두 형제를 낳았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 의해 강 씨 소생의 두 왕자가 죽자, 태조는 정사에 뜻을 잃고 태상당으로 있으면서 자주 정릉에 가서 불공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후 능역의 광대함이 의정부에서 논란이 되었고, 태조가 죽은 뒤로는 정릉에 대한 박대가 노골화하였다가, 태종의 뜻대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이 묘소는 단릉의 형식으로, 능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를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 당시의 것이며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하였다.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능침 아래에는 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있고, 일반 조선왕릉과 달리 직선 축이 아닌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었다. 진입 공간에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 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 양옆으로 서 있는 보호수 느티나무도 살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수도권 지하철 우이 신설 정릉역 2번 출구에서 600m에 위치하고 있다.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20272     2024-04-0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

무성서원은 신라말 유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 쌓은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고려시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생사당(生祠堂:생존해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창건하여 태산사라 하였다. 고려 말에 쇠약해졌다가 1483년(성종 14)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그 뒤 1549년(명종 4) 신잠의 생사당을 짓고 태산사에 배향하였으며, 1630년(인조 8) 정극인·송세림·정언충·김약묵, 1675년(숙종 1) 김관을 추가 배향하였다. 1696년(숙종 22)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武城)]이라고 사액되어 서원으로 개편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 서원은 1868년(고종 5)경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그 뒤 계속적인 중수와 보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우·현가루·명륜당·장수재·흥학재·고사 등이 있다. 무성서원은 그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하였으며,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에 항거하여 1906년 면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현장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고창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창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43777     2024-04-04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인돌공원길 74 고인돌박물관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으로, 우리나라에 3만여 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과 전북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전북지역은 2003년 조사 기준으로 424개 군집에 2,632기가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창군은 2023년 조사기준으로 전북 고인돌의 65% 이상인 1,748기의 고인돌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고창 고인돌유적은 죽림리와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무리 지어 분포하고,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단일 구역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분포한다. 또한 고인돌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 등 동북아시아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 기준 제3항(독특하거나 아주 오래된 것)을 적용, 세계유산적 가치를 인정했다. 고창은 고인돌 박물관을 비롯하여 제1코스 ~ 제5코스 1.8km (고창읍 죽림리, 아산면 상갑리 일대), 제6코스 1.7km (고창읍 도산리 일대)를 탐방코스로 만들어 3천 년 전 다양한 고인돌의 모습 그대로 전승하여 오고 있다.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57870     2024-04-04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조계산 기슭 동쪽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 1년 도선국사가 선종 9 산 중 동리 산문 선풍으로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하셨다. 반대편 서쪽 산 중턱에는 유명한 승보사찰 송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 주위로는 수령 수백 년 되는 상수리, 동백, 단풍, 밤나무 등이 울창하고 특히 가을 단풍이 유명하다. 또한, 절 앞에 아치형의 승선교가 있는데 (보물), 받침대가 자연 암반으로 되어 있어 견고하며, 중앙부의 용머리가 매우 신비롭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삼층석탑도(보물)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절의 하나로 보물 7점 외에도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 등 지방 문화재 12점이 있고, 선암사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높이 7m, 넓이 2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800년 전통을 지닌 자생 다원, 송광사에서 선암사를 잇는 조계산 등산로, 수정 같은 계곡물, 울창한 수목과 가을 단풍이 이곳의 멋을 더해 준다. 또한, 선암사 인근에는 지리산과 백운산과 마찬가지로 고로쇠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매년 경칩을 전후하여 약수를 맛볼 수 있다. * 선암사 칠전선원 * 전남 순천시 송주읍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 선암사에 있는 참선 장소.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으로서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다. ‘칠전’이란 선암사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일곱 채의 건물군이다. 선암사 뒤편의 야생차밭에 800년이 넘는 자생 차가 군락지가 있다. 차 배지에서 생산한 야생차는 화개 차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순 자연산 야생차는 선암사 차를 최고로 친다. 선암사 야생차의 특징을 ‘구수하고 깊은 맛’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차나무가 삼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음지에서 자라 찻잎이 연하고 운무와 습한 기후가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선암사 차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선암사 차밭은 규모가 크지 않아 수확량도 적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흥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51989     2024-04-04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찰로 임진왜란 때 선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차 안에 부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 생각한 초의선사가 대흥사의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넓은 산간분지에 자리 잡은 대흥사는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원과 남원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고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당우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이 특징이다.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동국선원 내에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대흥사에는 국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비롯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옥발, 비취옥발과 서산대사의 친필, 교자, 신발 그리고 금과 은으로 쓴 불경 등 총 24종의 유물이 있다.

남양주 홍릉(고종과 명성황후)과 유릉(순종과 순명,순정 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양주 홍릉(고종과 명성황후)과 유릉(순종과 순명,순정 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30153     2024-04-04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홍릉은 대한제국 1대 황제 고종(1852~1919)과 명성황후 민 씨(1851~1895) 능이고, 유릉은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1874~1926)과 순종의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 씨(1872~1904), 두 번째 황후 순정 황후 윤 씨(1894~1966)의 능이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의 조선 왕릉 형식과 다르게 대한제국 황제릉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황제릉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명나라 황제의 예를 참고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 계승하여 조성한 능이다. 기존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제향 공간에 있던 정자각 대신 침전을 두었고, 침전 앞부터 홍살문까지 향로를 따라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모양의 석물을 배치하였다는 점이다. 홍릉과 유릉 경내에는 의민 황태자(영친왕)와 의민 황태자비(영천 왕비)의 영원, 황세손 이구의 회인원, 의친왕 묘, 덕혜옹주 묘, 고종의 후궁과 의친왕의 후실 묘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은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 침략 야욕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에 국가와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 위하여 치열한 생을 살아간, 조선의 왕이자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안식처이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해설 프로그램에 참여를 원하는 방문객은 10:00, 13:30, 15:30 중 시간을 선택해서 종합안내소로 모이면 된다.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29710     2024-04-04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조선 제7대 세조와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을 취하였고, 두 능의 중간지역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웠다.세조의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에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처리하였다.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이전에 병풍석에 새겼던 12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또, 능역 아래쪽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생략되어 있다.이렇게 간소하게 능을 조성함으로써 부역인원과 조성비용을 감축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 능제(陵制)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상설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능 주위에는 문인석·무인석·상석·망주석·석호(石虎)·석양(石羊)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 광릉은 크낙새 서식지 *

광릉 주위는 30여만 평의 넓은 숲으로 100살 넘은 노목들이 울창하여 새들의 낙원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천연기념물인 크낙새 서식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