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4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향교3길 7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에 위치한 밀양향교 입구에는 밀성 손 씨의 고택들이 모여 있는데, 열두 대문 집, 밀성 손 씨 종택, 손병구 가옥, 손병순 가옥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한옥과 근대 한옥들이다. 그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밀양 교동 손 씨 고가는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손성증이 건축했으며, 3,300㎡(1천 평) 부지에 지어진 99칸 규모의 전통 한옥으로 3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명 ‘만석꾼 집’, ‘열두 대문 집’으로 불리는 이곳은 한옥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 씨 고가에서 운영하는 ‘열두 대문’은 밀양에서 유명한 전통 한정식 전문점으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손중배 씨가 모친 강정희 여사의 손맛을 이어나가기 위해 만들었다. 당시 손 씨고 가의 자랑인 열두 대문에 착안한 이름을 짓고 현재까지도 음식점을 운영해나가고 있다.
2024-09-19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48 (내일동)
관아는 지방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밀주구지(密州舊誌)』에 밀양의 관아에 대하여 “아사내외 동서헌별실백여간임진왜란탕진무여 만력신해부사원유남중창(衙舍內外 東西軒別室百餘間壬辰倭亂蕩盡無餘 萬曆辛亥府使元裕男重創)”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밀양읍성이 축조될 당시에 관아도 백여 칸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래 있던 건물은 선조 25년(1592년) 4월 임진왜란으로 전부 불타버렸는데, 이후 선조 32년(1599년)에 당시 부사 이영(李英)이 영남루 경내에 우선 초옥(草屋)을 세워 집무를 하다가 광해군 3년(1611년)에 원유남(元裕男)부사가 부임하여 원래 자리에 관아를 재건하였다. 관아의 중심 건물인 동헌(東軒)은 부사가 행정을 처리하던 곳으로 근민헌(近民軒)이라 불렀고, 동헌의 부속건물이라 할 수 있는 서헌(西軒)과 별실 등이 있었지만 자세한 용도는 알 수가 없다. 다만『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등에는 내동헌(內東軒)과 외서헌(外西軒) 건물이 별도로 있고, 내동헌은 부사 부인이 거처하던 곳이라 적혀있는 점으로 비추어 볼 때, 부사의 내실(內室:北別室), 책방(冊房:梅竹堂), 주방(廚房), 창고 등으로 활용이 되었던 것 같다. 1611년 중건 후 300여 년간 관청으로 사용되어 오던 관아는 조선후기에 동헌, 정청, 매죽당, 북별실 내삼문 이외에도 연훈당(延薰堂), 전월당(餞月堂), 신당(新堂) 등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정확한 위치나 규모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고종 32년(1895년)에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군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27년도에 삼문동으로 밀양군청을 신축하여 옮겨 가게 되자 본래의 용도가 폐지되었고, 구밀양읍사무소, 구밀양시청, 구내일동사무소의 청사 등으로 이용되다가 2010년 4월 관아를 복원하였다.
2024-10-22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만어사 앞 너덜겅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물고기 형상의 돌들이 널려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밀양 3대 신비로 분류된 만어사 경석이다. 크고 작은 반석들은 모두 경쇠소리가 나며, 이는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변한 것이라 전하고 있다. 한반도 빙하기가 끝난 후 많은 비가 내려 이곳의 암석들이 양파가 벗겨지듯 침식·풍화되며 생성된 암괴류로, 700m 이상 길게 펼쳐지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등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크다. 만어사 경석은 마치 견고한 요새처럼 만어사 일대를 빙 둘러싸고 있다. 바위의 크기는 각각 다르지만, 색깔은 검거나 회색 등으로 동일하고, 손에 쥘 수 있는 돌멩이로 두드린 자국을 때리면 마치 길고 긴 여운을 남기는 듯한 맑은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돌이 무너져 내려 쌓인 돌너덜 지대인 만어사 경석은 어떤 연유로 종소리가 나는지 지질학자와 전문가들도 아직까지 풀지 못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어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고려 말기의 일연선사도 이 절을 순례하며 영험한 명찰이라고 일컬었을 만큼 유명한 사찰이고 신비스러운 경석이다.
2024-08-22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64
자연명상마을 옴뷔는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위치한 곳으로 숙박시설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숙박은 싱글룸, 트윈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숙소에는 편백나무의 명상공간이 있다. 객실 내에는 디지털 디톡스라고 하여 TV, 인터넷, 냉장고가 없으니 참고하면 된다. 이곳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으로 요가와 명상이 있다. 호흡과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으로써 내면의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프로그램과 시간은 변동될 수 있다. 또한 외부에는 산책을 할 수 있는 정원과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평온한 힐링 여행을 원한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2023-10-27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안길 3
지리산 둘레길 4코스 6개의 산중 마을 중 두 번째 마을이다. 금계마을에서 지금은 폐교된 의탄분교와 의탄교를 지난 곳에 있다. 지리산 동북산자락 산악활동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의탄마을, 의중마을, 의평마을 중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가락국 구형왕이 추성에 있을 때 이곳에서 참나무 숯을 굽지 않았나 하는 추측설이 있어 ‘숯 탄’ 자를 썼다는 설도 있고, 여울목이라고 하여 ‘여울 탄’ 자를 썼을 것이라는 추측도 전해진다. 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함양 박 씨와 경주 정 씨가 남원에서 들어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2023-10-12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중길 38-2
의탄마을을 지나 고갯길을 넘으면 낮은 주택들과 소박한 골목이 여기저기 뻗은 의중마을이 나타난다. 5월이면 옻나무가 푸르른 마을로 옻칠 전통을 이어오는 작업장에서 생칠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옻나무에 흠을 내어 진액을 받아내는 것을 생칠, 옻나무를 잘라다 구워 진액을 받아내는 것을 화칠이라고 한다. 약이 귀하던 시절 이 마을 일대에서는 땅속에는 금, 땅 위에는 옻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의중마을의 화칠로 받아낸 옻나무 진액을 받아다 보약으로 마셨다고 한다.
2023-12-05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1075
휴천면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가장 좁은 마을로, 민가가 밀집되어 있기보다 드문드문 서있다. 식용식물이 자생하기로 유명한 곳으로 품질 좋은 산채류가 자라는 곳이다. 인근 남호리 절터 마을과 동호마을에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한 뒤, 백성들의 차 공출에 대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차나무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그것을 기념한다는 사적비가 마을 앞에 서 있다. 1472년 지리산을 탐방하고 쓴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따르면 '한 여인이 바위 사이에다 돌을 쌓고 들어가 도를 닦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독녀암을 지금의 함양 독바위로 보고 있다.
2023-11-01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세동길 42
지리산 둘레길 4코스에서 네 번째 만나는 마을로 세동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행정구역인 휴천면 중에서는 가장 오지에 속하는 마을이나 둘레길에서 4km를 차지하는 긴 구간이자 산촌생태마을로 지정되어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각양각색의 민박집들이 많다. 송전마을은 사도세자가 들렀던 곳으로 이곳의 당산굿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술 한잔을 더 올리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화장실 밑에서 재래종 돼지인 일명 똥돼지를 키우던 마을이자 닥종이를 생산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지금도 담벼락 밑에서 자라는 닥나무들을 볼 수 있고 닥종이를 삶던 가마가 있는 검게 그을린 돌무더기를 확인할 수 있다.
2024-11-08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안길 11-3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종착지에 있는 마지막 마을로 강변과 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마천면 소재의 마을로 일조량이 좋고 경관이 수월하다. “동구 마천 큰아기는 곶감 깎으러 다 나가고”라는 노랫말처럼 가을이면 감을 깎아 매달아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유명한 휴양 명소인 지리산 칠선계곡이 있고 고사리, 곶감 등을 주요 작물로 재배한다.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가 있어 민박 사업과 연계하여 농가 소득을 창출하기도 한다. 마을 내 별도의 귀농, 귀촌인 집단 거주 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앞으로도 추가 귀촌, 귀농인을 받을 계획이다.
2023-10-12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오율길 5
오율마을은 밤실, 여차골, 불당골, 시양골, 오대 등 여러 작은 동네들이 모여 이룬 마을을 일컫는 이름으로 옛 오대산 절터의 유적이 있는 마을이다. 닥나무가 많아 지금도 일부 마을에서 품질 좋은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예부터 오율마을의 남산 산발치에 연못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덤불이 우거져 샘물이 솟고 있음에도 형체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옛날 오대사가 망할 때 절의 보물들을 이 연못에 던져 넣고 갔다고 전해진다. 시양골에는 양봉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