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수림서원

수림서원

2025-03-19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화산4길 201-54

수림서원은 1856년(철종 7년) 무열공 배현경, 배정지, 배인경 선생 등 여섯 분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배현경 선생은 고려 태조 때의 무신이며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했다. 수림서원은 지방교육과 선현 배향을 해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림서원의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왼편에 방 2칸, 가운데에 대청 2칸, 오른편에 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문인 조제문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솟을대문으로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강당 전면 오른편에는 앞면 3칸, 옆면 3칸 크기의 삼량구조의 팔작지붕으로 된 산해정이 자리 잡고 있다.

송호서원

송호서원

2025-03-19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호서원길 8

조선 전기 학자 고은 이지활(1434∼)을 기리기 위해 경상도 유림에서 세운 서원이다. 이지활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남은 여생을 산속에서 은거하다 세상을 떠난 분이다. 죽은 뒤인 고종 28년(1891) 나라에서 이조판서의 벼슬을 내렸다. 순조 30년(1830)에 세운 이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6년(1869)에 해체되었으나 1947년 다시 복원하였다. 후일 세종대왕의 아들로 이곳 함양에서 돌아가신 이어(李瘀)와 이지활의 손자인 송계 이지번을 추가로 모셔 현재 이곳에는 3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경내에는 대표적인 건물로 경앙사, 대문 격인 승사문, 서원이 있다. 경앙사에는 3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강당인 서원은 학문을 교육하던 장소로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는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이 외에 제사준비와 제사도구를 보관하는 건물, 서원 관리인이 살고 있는 건물 등이 있다.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현재 해마다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송담서원(양산)

송담서원(양산)

2024-06-10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서2길 14-13

서원은 국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함께 유교의 경전을 가르치던 사설 교육기관이다. 교육활동 외에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도 함께하였다. 대부분 선현의 문하생이나 후손들이 그를 기리고, 후학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하였다. 송담서원은 양산 출신인 백수회(1573~1642)를 배향하고 있다. 백수회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장수가 항복하기를 강요하였으나 왼팔에 차라리 이씨 귀신이 될지언정 개,양과 같은 일본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寧爲李氏鬼 不作犬羊臣)’라는 글을 새기고 목숨을 버릴 것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 후 9년간 억류되었다가 귀향하였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은 백의사(白義士)라 불렀다. 그 후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려고 할 때, 통곡하며 반대하는 절의를 지켰다. 1717년(숙종 43) 서원을 세우고 그의 호를 따서 송담서원이라 하였는데, 국왕이 서원의 편액을 내린 사액서원으로 양산에서는 유일하다. 송담서원에는 백수회의 문집인 [송담선생유사집]과 송담서원의 역대 원장 명단인 [송담원록]이 남아 있다. 지금도 매월 음력 초하루 후손들이 모여 제례를 올리고 있다.

소노서원

소노서원

2025-03-19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노2길 13-27

1835년(헌종 2)에 건립한 것으로 임진왜란 때 공이 많은 충신 정호인, 정호의 형제의 우국충정의 얼을 길이 새기고자 향중유림의 공의로서 양위 배향하기 위해 서원을 짓고 매년 가을에 향사하고 있으며, 1929년에 동래정씨문중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상의사와 강당이 풍우에 퇴색되어 1985년 유림에서 사우를 중건하고 강당을 확장, 중건하였다. 서원은 국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함께 유교의 경전을 가르치던 사설 교육기관이다. 교육활동 외에 선현에게 제사 지내는 일도 함께 하였다. 대부분 선현의 문하생이나 후손들이 선현을 기리고 그의 뜻을 이어받아 후학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하였다.

소곡서당

소곡서당

2025-03-16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길 111

소곡서당은 1650년경 창건된 소곡서원이 창건 200여 년 후 퇴락됨에 따라 1856년 당초 서원 터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북쪽 산기슭에 지금의 소곡서당을 건축하고, 청민공, 노변소, 만취공, 참봉, 노침, 절효공, 진사, 노홍언 3인을 합향하다가 대원군의 서원 훼철 시 피해를 입었다. 소곡서당의 현 배치형태는 튼ㅁ자 형으로, 남북축선 상에 대문채와 강당을 두고, 그 정면 좌우에 관리사와 영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경내 영사정은 1825년에서 1830년경에 창건된 건물로, 1925년에 강당 동편으로 옮겨 중건되었으며, 1998년에 지붕 등을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1998년 강당 서편에 있는 관리사를 크게 수리함과 동시에 강당의 한식기와를 철거하고 대신 근년에 공장에서 암수 일체형으로 생산되는 간이기와를 매입하여 보수하였다. 대문채는 2000년에 정면 5간, 측면 1간 규모로 신축한 건물이다. 소곡서당과 관련하여 남쪽 500여 미터 지점에 청민공묘(기념물 153호)가 자리 잡고 있고, 북쪽 500m 지점에는 절효공 노침의 묘가 있다.

소계서원

소계서원

2025-03-19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로 38

소계서원은 조선 태종 때 유학자인 안몽득 선생과 그의 아들 안우, 안주, 안택 3형제, 임진왜란 공신 안근, 안수, 안시명, 안이명, 안신명 등을 추모하기 위하여 1783년(정조 7년) 광주 안씨 문중에서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은 국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함께 유교의 경전을 가르치던 사설 교육기관이다. 교육활동 외에 선현에게 제사 지내는 일도 함께하였다. 교육 기능보다는 선현에 대한 제례 기능이 강조된 것이 사우이지만 조선 후기에는 서원과 사우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서원이 제례 위주의 사우가 되기도 하고, 사우가 서원처럼 되기도 하여 소계서원을 소계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천서원

성천서원

2025-03-16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계수나무길 18-47

1703년(숙종 29)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성천 서원(星川書院)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동춘당 송준길은 율곡과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서인에 속했다. 진사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 찬선 등의 벼슬을 지냈다. 예설에 밝은 분으로 송시열 등과 뜻을 같이 했다. 공은 거창 마리면의 영승 서원과 문묘 등에 제향 되어 있고, 『동춘당집』 등의 저술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지금도 월성 마을 뒤에는 초당과 비가 세워져 있다.

서계서원

서계서원

2025-03-16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덕우지길 51

산청읍에 위치한 서계서원은 조선 중기 문신 덕계 오건 선생(1521~1574)의 학문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606년(선조 39)에 한강 정구를 비롯한 사림이 창건하였다. 1677년(숙종 3)에 서계서원으로 선현을 배향하고 지방 교육을 담당했으며, 산음현(산청군의 옛 지명)의 유일한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921년에 복원되었다. 경내는 3칸의 창덕사를 비롯하여 4칸의 강당, 3칸의 부속 강당, 각 2칸의 동재와 서재, 대문, 3칸의 고사, 4칸의 태실로 구성되어 있다. 신성한 공간인 창덕사에는 오건 선생을 주향으로 봉안하고, 왼쪽에 오간과 박문영, 오른쪽에 오장의 위패를 각각 봉안하여 해마다 음력 4월 2일에 사림들이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건물 구조는 전형적인 서원의 배치 형태로서 솟을대문인 입덕루를 들어서면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고, 그 뒤 강당인 서계서원이 있다. 강당 뒤로 창덕사가 있고 덕천재와 장판각, 비각이 축을 이루고 있다.

송호서원

2024-12-26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신성동2길 22-3

송호서원은 충숙공 문극겸(1122∼1189)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문극겸은 고려시대 무신들이 집권한 시기의 문신으로, 재상이 되었을 때에도 상장군을 겸하고 무신들의 자문에 응하는 등 문무를 겸비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송호서원은 정조 1년(1777) 대병면 역평리에 세웠다. 그 뒤 고종 7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57년에 사우 등을 복원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합천댐 건설로 1985년에 옮겨 복원한 것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송담서원(김해)

2024-06-10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송담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김해에서 의병을 일으켜 성을 지키다 전사한 4명의 의병장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의 공을 기리는 묘단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부산에서 동래성을 함락한 왜적이 병력을 이끌고 김해성을 공격해 오자 당시 장군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니 네 의병장이 각기 의병들을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적과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다 순절했는데, 이것이 임진의병의 시작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3년 만인 1600년 선조가 이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각자 벼슬을 올려주고, 숙종 34년(1708) 지방 사림들의 도움으로 송담사와 송담서원을 세워 위패를 모셨다가 순조 33년(1833) 표충사라 이름하였다. 고종 8년(1871) 단을 설치하여 사충단이라 이름 짓고 비를 세웠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을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비각 이외에는 모두 새로 지은 건물들로, 비각은 앞면 1칸, 옆면 1칸의 규모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의 선을 그리는 맞배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