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휴정서원

휴정서원

2025-03-17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길 87

휴정서원은 숙종 25년(1699)에 연산에 건립되었으며, 유무를 주향으로 하고 유문원, 이항길, 김정망, 권수 등 4인을 추배 하였다. 고종 8년(1871) 전국적인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19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그 후 탑정저수지가 완공되면서 서원이 수몰되자 1944년 현재의 위치에 단소를 설치하였다가 1984년 사우를 복원하였으며, 1985년 구봉 송익필을 주향으로 하고 김공휘, 김호, 이항길, 유무, 김상연, 김진일, 김우택 등 8위의 위패를 봉안했다.

행림서원

행림서원

2025-03-19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길 27-1

행림서원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으로 만죽헌 서익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서익은 선조 2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의주 목사까지 올랐으나, 탄핵을 받은 이이와 정철을 변호하여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서원은 고종 4년에 지었는데 서원 앞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행림서원이라 이름 짓고, 산노리 효암서원에서 분향하던 서익 선생을 옮겨 모셨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26년에 다시 짓고, 이소 선생을 추가로 모셨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경내에는 서익 선생의 묘정비가 있으며,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주변 관광 명소는 반야사, 탑정 저수지, 효암서원, 둥구리 농촌체험휴양마을 등이 있다.

퇴수서원

퇴수서원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충절로1001번길 24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퇴수서원은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풍양 조씨 3인(석곡 조박, 성강 조견소, 퇴수재 조성복)을 제향하고 있다. 조박은 선조 3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국정을 수행하는 최고의 관료 집단인 당상관 중에 통정대부를 지냈다. 조견소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관직이 금구 현령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 조성복은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으나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퇴수서원은 영조 33년 세도면 동사리에 처음 지었는데, 처음에는 조성복의 위패만을 모셨다. 그 뒤 1957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기면서 조박과 조견소를 함께 모시기 시작했다. 서원 인근에 반원서원, 간곡서원, 임천향교가 있다.

칠산서원

칠산서원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부흥로171번길 73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칠산서원은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 있는 시남 유계(1607∼1664)를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계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예에 관해 정통한 학자이다. 김장생의 제자이며 충청도 유림의 오현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이 서원은 숙종 13년(1687)에 세워 숙종 23년(1697)에 임금으로부터 칠산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67년에 복원하였다. 서원 경내에는 제사 공간인 사당과 공부하는 공간으로 강당, 장판각 등이 있다. 서적을 보관하는 장판각에는 저서인 가례원류의 책판과 시남집의 목판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칠산서원 인근에는 간곡서원, 동곡서원, 반산서원, 퇴수서원, 부여 대조사가 있다.

청일사

청일사

2025-03-19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내로29번길 35-4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과 단종의 폐위로 홍산에 은거했던 우옹(迂翁) 김효종((金孝宗), 1414∼1493)의 뜻을 기리기 위해 광해군 13년(1621)에 세운 사우이다. 김시습은 조선 전기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인물이다. 지금 있는 청일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잠시 폐쇄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청일사의 전체적인 배치는 자연 지형을 따라 언덕 위에 사당을 세우고 그 앞에 4개의 기둥으로 된 문이 자리하며, 문을 지나 계단 아래쪽으로 좌우에 청풍각과 수직사가 배치되어 있다. 인근에 홍산향교, 홍산객사, 홍산동헌, 홍산관광농원이 있어 연계해서 둘러보기 좋다.

창렬사

창렬사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

부여군 구룡면에 있는 사우로 삼학사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오달제·홍익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숙종 43년(1717)에 건립하였고 경종 1년(1721)에 창열사란 현판을 임금이 내렸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사당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내삼문을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 강당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근래 지은 외삼문이 있다. 병자호란 때인 인조 14년 조선을 속국으로 하려는 모욕적인 문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을 살려 보내지 말자고 주장하였으나, 이듬해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모욕적인 화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삼학사는 청나라에 잡혀가게 되었다. 청 태종이 직접 이들의 심문에 참여하여 설득과 회유를 하였으나 심한 고문을 견디면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가 결국 중국 선양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청 태종도 이들의 기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후대인들도 이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고 높은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부여 금사리 성당, 청일사, 홍산향교, 부여 상천지가 있다.

창강서원

창강서원

2025-07-04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삼충로서원북길 13-2

창강서원은 추포 황신(1560∼1617)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황신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혼과 이이의 가르침을 받았다.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는데, 임진왜란 때에는 절충장군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죽은 뒤에 우의정의 직함을 받기도 했다. 인조 7년(1629)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8년(1682) 임금으로부터 ‘창강’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66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이전·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제사 지내는 사당과 배움의 공간인 강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 보름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의열사 (부여)

의열사 (부여)

2025-03-19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3

의열사는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현감 홍가신이 세운 사당이다. 후에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선비 정택뢰, 인조 (재위 1623∼1649) 때 문신 황일호(1588∼1641)를 추가로 모셔 현재는 6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 선조 8년(1575)에 처음 지어 인조 19년(1641)에 새로 고쳐지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헐렸다가 그 뒤 다시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현 남령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주변에는 그 외에도 부여향교,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관북리 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소산성 등이 있다.

용문서원

용문서원

2025-03-19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골길 54-12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용문서원은 충남 공주시내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서원은 1663년(현종 4) 이유태가 공주 중동(지금의 상왕동)으로 이주한 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사립 교육기관으로서 이곳에서 수백 명의 문인을 육성하였다고 한다. 원래 명칭은 용문서재이며, 지금의 용문서원은 1977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고택과 함께 복원한 것이다. 사우 6칸, 신문 1칸, 좌우 협문 각 1칸, 장서각 6칸, 동재 6칸, 유물 전시관 8칸, 강당 8칸, 고사 1칸, 대문 3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문서원을 중심으로 왼쪽에 고택이 있다. 현재 사단법인 이초려기념사업회(초려는 이유태의 호)에서 소유하고 있으며, 이유태의 문중인 경주이씨 문헌공파 종가에서 관리한다. 이곳은 공주 이유태 유허지라 하여 2004년에 충청남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되었고, 이곳에서 발견된 이유태 관련 유물들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왕의영당

왕의영당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초왕리

조선 초기의 문신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김문기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세종 8년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456년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자 고문에 굴하지 않고 처형되었다. 경내 입구 오른쪽에는 충의 공백촌김문기선생묘정비가 세워져 있고, 여기에서 9단의 층계석을 오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외삼문이 나타난다. 외삼문은 솟을삼문형이며 상량문이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된 사당을 볼 수 있다. 측면 2칸 중 앞면 1칸은 개방된 툇간이고 뒷면 1칸은 간통으로 영정을 안치하고 있다. 1 고주 5량 집으로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왕의영당 인근에 서동요 테마공원, 반산서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