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수곡서원

수곡서원

2025-03-25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수곡안말길 41-1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피화 당한 권경우, 권경유 형제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다. 의친왕 이강(李堈)이 친필로 현판을 써 주었으며, 1926년에 중수하고 1976년에 신문(神門)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신문·동서협문·강당 등이 있다.

소산서원

소산서원

2025-05-12

경기도 시흥시 소산서원길 20 (신천동)

소산서원은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 문효공 하연을 모신 곳이다. 입구에는 한자로 소산서원이라고 쓴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이곳으로 들어가면 효자정각이 있는데, 효자정각은 하연의 셋째 아들인 하우명 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각이다. 홍살문을 지내면 소산서원 앞에는 소산서원기실비가 있다. 이 비석에는 하연 선생의 일대기와 소산서원에 대한 기록이 적혀져 있는데, 내용을 보면 하연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21살에 벼슬에 올라 이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의 벼슬을 두루 거친 인물로 황희, 허조와 함께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서원 좌우측에는 소래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등산로를 조금 오르다 보면 우측에 하연선생의 묘가 있다. 소산서원 내에 있는 숭덕재에는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원하면 해설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차 한잔도 대접받을 수 있으니, 소산서원 문화 기행을 한 후에 소래산 등산로를 산책하는 것도 좋다.

설봉서원

설봉서원

2025-07-23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276 (관고동)

설봉서원은 조선중기 1564년(명종19)에 이천부사 정현이 설립한 서원으로, 이천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 보다 21년 늦은 기호지방 최초의 서원으로 출발하여 1593년(선조26) 관으로 이전되었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로 1871년 훼철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천시에서 전국기초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예산을 지원, 이천의 4대 문중과 함께 2007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지금이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상현사, 명교당, 동재, 서재, 내삼문, 양현문, 양사재(관리사무실), 전사청, 협문 등이 있고, 복천 서희, 율정 이관의, 모재 김안국, 소요재 최숙정, 해화당 서선 성생을 배향하고 있다.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의 가능만 남아 개방, 운영하지 않는 다른 서원과는 달리 월~토요일까지 상시 개방하며 일반인 및 학생 및 다문화, 외국인, 기관 및 사회단체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인성 및 전통 예절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설봉산 자락의 설봉공원 일원에 위치해 있어 공원 내 이천시립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을 비롯 설봉국제조각공원, 문학동산, 설봉저수지 등을 함께 연계 방문할만하다.

매산서원

매산서원

2025-03-20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능서로 94-8

매산서원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조 때에 경상남도 거창과 산청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건립되었다. 그 후 목은 이색과의 친분을 감안하여 추향하고 매산[梅山]이라는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때 후손인 문겸[文謙]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여 춘추로 제향해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 훼철되었다. 이후 삼우당의 후손으로 여주경찰서장에 취임한 문광규[文光圭]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8년에 한차례 더 보수하였고 1987년에는 서원내의 사당을 헐고 다시 지었다. (출처 : 여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노강서원

노강서원

2025-07-14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122번길 153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의 폐위가 부당하다고 간언 하다 죽음을 당한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1695년(숙종 21)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하였다.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1697년(숙종 23)에 숙종이 ‘노강’이라고 이름을 지어 새긴 현판을 내렸다. 이후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 이후에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77년(숙종 3)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 민 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694년(숙종 20)에 모든 죄를 사면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文烈)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출처 : 의정부시 문화관광)

기천서원지

기천서원지

2025-06-30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뒷머리길 11

기천서원은 조선전기의 문신 김안국(1478-154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서원으로,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된 여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본래 1580년(선조 13) 김안국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마암에 마암서원으로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08년(선조 41) 현재 위치로 이전해 복원하였다. 이후 조선 중종대부터 효종대까지 이름난 현인인 이언적·홍인우·이원익·정엽·이식·홍명구·홍명하까지 총 8명을 함께 배향하였다. 1625년(인조 3)에 기천서원으로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1937년 유림들이 사당으로 고쳐 모현사라 불렀고, 1979년 사당을 새로 지어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기천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강당 없이 사당, 동재, 서재, 삼문 등이 있고 서원 옆에 모현사가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분향하는 제사의 기능만이 남아있으며, 현재 상시 개방되고 있지 않다. 인근에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영녕릉(세종대왕•효종대왕릉), 황포돛배, 파사성, 이포캠핑장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만하다.

옥병서원

2024-12-10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옥수로327번길 189

옥병서원은 포천군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박순(朴淳)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조선 후기 서원이다. 박순의 자는 화숙, 호는 사암, 본관은 충주이다. 명종 8년(1553)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대사헌, 대사간,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으며, 선조가 [송균절조수월정신]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청렴하고도 강직하였다. 효종 9년(1658)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박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숙종 24년(1698)에 이의건과 김수항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713년에 [옥병]이라고 사액되었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되어, 위패는 서원 터에 매안하고 단을 설치하여 향사를 지내왔다. 1926년에 김성대·이화보·윤봉양을 추가로 제향하였고, 1978년에 이명우를 회장으로 한 옥병서원 복원 추진회를 결성하여 198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 건물로는 6칸의 숭현각, 신문, 동서 협문, 박순 묘 및 신도비 등이 있다. 사우인 숭현각에는 박순을 주벽으로 이의건· 김수항·김성대·윤봉양·이화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옥병서원에서는 매년 3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선현의 향사와 향촌 교화가 서원 본래의 사명이듯이 옥병서원 역시 제향을 통하여 지역의 전통과 예절 교육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안곡서원

2024-11-13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로 860-36

안곡서원은 현종 7년(1666년)에 남양 현감으로 부임한 민시중이 지방유림의 의견에 따라 기묘사화로 귀양을 간 박세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안곡사가 있던 곳이다. 이후 현종 9년(1668년)에 박세희의 큰형으로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효행을 실천하여 존경을 받았던 박세훈을 사당에 모셨으며, 1697년에는 영의정을 지낸 홍섬을 추가로 모셨다. 안곡사는 경종1년(1721년) [안곡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으며 서원이 되었다가 고종8년(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남양지역 유림들이 1976년에 다시 지었다. 안곡서원의 건물은 홍살문, 강당, 내삼문, 사당로 구성된다. 강당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안곡서원중건기]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 사당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5칸으로 박세희를 주벽으로 양쪽으로 박세훈, 홍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서원 밖 바로 앞에 현재 450년이 훌쩍 넘은 높이 32m의 은행나무가 서있는데, 이 나무는 안곡서원과 함께 고락을 함께 해왔다. 안곡서원은 1976년 사우가 중건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서신면에 거주하는 상주 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문헌서원

2025-08-05

경기도 오산시 수청로 79-8

문헌서원은 고려시대의 문신 최충(984~1068년)과 그의 아들인 최유선, 최유길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오산시 내삼미동의 문헌공원 안에 위치해 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에 능했던 최충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현종•덕종•정종•문종에 이르는 네 명의 왕을 섬겼는데 특히 명종대에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뛰어난 그 행적이 중국의 공자와 같다고 해서 해동공자라 칭송 받았다. 1053년(문종 7년) 문종의 만류를 뿌리치고 은퇴를 결심한 최충은 이후 후진양성에 힘썼는데, 그가 세운 9재학당은 사학교육의 원조이자 고려시대 문신 배출의 산실이었다. 율곡 이이는 은퇴 후 문헌서원의 원장으로 학규를 제정한 바 있으며, 주세붕은 최충의 9재학당을 모방하여 백운동에 ‘소수서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문헌서원은 본래 황해도 해주에 있던 사액서원이었으나 남북분단으로 찾아갈 수 없게 되자 1991년 남한의 후손들이 연고지인 오산시에 서원을 건립하여 영정을 다시 모시게 되었다. 이후 매년 4월 제례를 지내왔으나 오산시의 도시계획에 의해 영정각만 남고 그 외의 부지는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를 위한 문헌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영정각과 최충 동상만이 남아있으며, 제례는 종전대로 해주 최씨의 후손들이 매년 4월 제 4토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덕양서원(고양)

2025-01-08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대로 1445-46

덕양서원은 고양시 덕양구 행주 기씨 도선산(시조들이 모셔져 있는 곳) 내에 자리잡고 있는 서원으로 2002년 개원하였다. 덕양서원에는 정무공 기건, 정렬공 기찬, 문헌공 기대승 등을 배향하였다. 이후 2005년 정암 조광조와 추만 정지운을 추가로 함께 배향하였다. 행주 기씨는 경기도 고양시 행주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청주한씨 그리고 태원 선우씨 등과 함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들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