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8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읍 서향교1길 55
언양향교는 본래 반월산 아래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여러 차례 옮겨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숙종 22년(1969)에 도유사 김정하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 문묘 영역만 조성하였고, 숙종 26년(1700)에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세웠다. 그 뒤 1859년, 1870년, 1900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1900년까지는 문묘 영역에 동, 서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언양향교는 일반적인 지방 향교의 배치 형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성전 축과 명륜당 축이 어긋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겹처마 익공양식의 맞배지붕집이다. 언양향교는 음력 4월 11일(공자 기일), 음력 8월 27일(공자 탄기일) 석전대제를 봉행하며 매월 음력 초하루에 치르는 삭망분향례에는 일반인 참여도 가능하다. 그 외에도 기로연, 성년식을 치르며 유림회관은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익히고 체험하는 시설로 지역 유림 간의 소통과 화합 및 관내 초·중·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절교육, 전통문화체험, 인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25-06-19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전로1397번안길 126
회덕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국립교육기관이다. 회덕향교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에 다시 짓고 1812년(순조 12)에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 동무, 서무 등이다. 지금의 모습은 1969년에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진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 남아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향토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판본 18종 25 책, 사본 20종 24 책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회덕향교 대성전은 국도 17호선에서 대전로 1397번 길로 접어들어 진입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대전 IC 및 신탄진 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북대전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회덕향교 외에 계족산, 계족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2025-07-04
대전광역시 유성구 교촌로 6 (교촌동)
진잠향교는 대전 서남부에 위치한 향교이다. 이곳은 1405년(태종 5)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명륜당, 동재, 대성전 등이 있으며 그중 대성전은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봄과 가을에 초하루 및 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24-12-09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29-49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지방 교육기관이다.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년)에 창건된 한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향교이다.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과 송조2현 및 우리나라 18현 (최치원, 설총, 조광조, 이황 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
2025-07-11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1길 78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에 위치한 금강대도는 한국 자생 종교의 본원으로, 1874년에 창도되었다. 이 종교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서 건곤부모의 지상화현을 믿으며, 의성을 중심 사상으로 천지인, 유불선, 심성신의 삼합 원리를 추구하여 도덕적 화합을 이루는 이상 낙원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정신 함양과 독립의 희망을 주창하며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받은 민족종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금강대도는 유·불·선의 진리를 하나로 통합해 인류의 미래인 후천시대 오만 년 동안 도덕 문명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대동세계를 이루고자 창도된 오랜 역사의 한국 민족종교이다. 종교 시설물들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강제 철거되었으나 해방 후 복원되었으며, 금병로를 따라가다 보면 양쪽에 펼쳐진 연꽃밭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어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입구에는 개도백년탑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이 있어 시민들에게 쉼터 역할을 한다. 단청이 아름답게 그려진 개화문을 지나면 오만수련광장, 금종루, 성경대, 삼청보광전, 그리고 대도덕성사 건곤부모님을 모신 삼종대성전 등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2025-05-20
세종특별자치시 비암사길 137 비암사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비암사 도깨비 도로는 내리막 길이지만 마치 올라가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구간을 말한다. 비암사로 올라가는 약 1.3km 중간지점쯤 150 여m 구간이 해당된다. 도깨비 도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호기심 많은 관광객은 한 번쯤 시험해보기도 한다.
2025-01-21
경기도 하남시 대성로 126-13 (교산동)
광주 향교가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703년에 광주 관아 서쪽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광주향교는 경기도 지역향교 중에 드물게 평지에 배치되어 있어 영역 구분을 단이 아닌 담장으로 하고 있다.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를 두어, 앞에는 학문하는 공간, 뒤에는 제사하는 공간을 두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사람 인]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수복실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 증자, 안자, 맹자, 자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동무와 서무에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교성현 20명이 모셔져 있다. 광주향교 입구에는 유구한 약사를 보여주는 듯 수령이 꽤 들어 보이는 은행나무가 네 그루 보이는데, 약 450~500년 된 은행나무들로 1981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안쪽으로 보호수가 한그루 더 있는데 이 나무는 특히 광주향교의 수호목이다. 조선 태조 5년 이곳에 향교를 세우고 경관을 꾸밀 때 한 지관이 이곳은 거북이 형상으로 생산을 의미하며 땅의 기운을 끌어들이고 북돋아주는 명당자리라며 은행나무를 심으라고 하여 심게 된 나무이다. 광주향교에서는 향교서원활용사업의 일환으로 [광주향교로 떠나는 문화여행] 행사를 통해 하남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합창단들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하고, [별에서 온 선비]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하남 및 인근 지역의 미취학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2025-03-05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차성로417번길 35
051-721-3287
기장향교는 조선 광해군 9년(1617)에 처음 지었다. 철종 6년(1855)의 성묘중수기(聖廟重修記)가 남아 있는데, 지금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뒤로한 전학 후묘의 공간 구성을 이루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풍화루,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양쪽칸은 온돌방이고 가운데 3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2025-05-20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도신고복로 586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저수지시립공원 안에 있는 공원이다. 연기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 고복저수지 상류에 높이 10m의 연기대첩비를 건립하고, 대첩비 주변 지역을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연기대첩은 1291년(충렬왕 17년) 고려를 침공하여 금강 연안까지 밀고 내려온 원나라의 반란군 합단적을 한희유, 인후, 김흔 등이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정좌산에서 격파한 싸움이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역사서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는 7대 대첩 중의 하나로 꼽힌다. 공원 안에는 대첩비 외에, 급수대, 시범화장실, 주차장, 놀이시설, 파고라, 잔디광장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이다.
2025-07-04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
조선 단종 때의 충신인 절재(節齋) 김종서(1383~1453) 장군의 묘소이다. 태종 5년(1405) 문과에 급제한 후 함길도 도절제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세종 16년(1434)에 6진을 개척하여 국토 확장의 위업을 이룩하여 현재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선이 이때에 확정되었다. 또한, 그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세종실록」 등의 편찬에 참여하여 학자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지용을 겸비한 명신이었으나 단종이 12세로 왕위에 오르자 어린 왕을 보필하다가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에 의해 1453년에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사육신과 함께 영조 22년에 관직이 복구되고 충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때 부조묘(조선 시대 신위를 영원히 모셔 제향 하도록 하는 사당)도 받았다. 부조묘의 전통을 이어 2019년 묘소 앞에 충익사를 건립하였다. 충익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전통 제례에 따라 절재 김종서 제향 행사가 개최된다. 묘역 입구에 영조 22년에 건립된 김종서와 아들의 충과 효를 기리기 위한 충효정려가 있다. 묘역은 약 200평으로 둥근 담장과 충의문이라고 하는 삼문으로 되어 있으며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