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왕십리맛골목은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에 위치한 음식 거리로,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교통이 편리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랑하며, 직장인과 학생들의 모임 장소로 인기 있는 먹거리 명소입니다.
이용안내
위치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조로 17 (행당동)
왕십리맛골목은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에 위치한 음식 거리로,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교통이 편리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랑하며, 직장인과 학생들의 모임 장소로 인기 있는 먹거리 명소입니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조로 17 (행당동)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순환로 271-9
2024년 신규 개관한 성주 과일 어린이 과학체험관은 성주를 대표하는 과일인 참외를 포함한 여러 과일과 관련한 교육, 체험, 놀이공간 등이 갖추어진 체험관으로 매월 ‘이달의 과학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체험관은 '과일이 알려주는 과학 이야기'를 주제로 실내 놀이공간과 실험공간 등이 있으며, 경북 어린이 교육 전문 기관인 아이나라 유아 교육센터와 연계하여 여러 가지 과학 놀이와 실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어린이들이 놀이와 체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 공간으로,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과일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한 과학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다. 관람객은 사전 예약접수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사전 예약하지 않은 현장 방문의 경우 선착순 10명 명단 작성 후 대기할 수 있다.
2024-12-13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465-67 (신평동)
정글미디어파크는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에 위치한 체험형 미디어 공간으로, 자연 환경과 첨단 기술을 결합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
이 가옥은 독립운동과 교육진흥에 일생을 바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이 출생한 생가인데, 선조로부터 세거(世居) 해 온 전래의 건물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고, 현 안채 건물은 광무 5년(1901)에 중건(重建)된 것이다. 생가는 청천서당(晴川書堂)에서 우측으로 약 100m 거리에 위치하며, 장방형 토석담 내에 안채와 1991년에 건립한 사랑채, 판각고(板刻庫) 등이 'ㄷ'자형으로 이루고 있다. 김창숙의 호는 심사·벽옹(躄翁),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조선 선조조의 명신이며 학자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후손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기 이전부터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하고, 강점된 후에는 유림으로서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일제에 의해 투옥되어 갖은 옥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유도회를 조직, 성균관대학을 창립하여 초대총장을 역임하였다. 김창숙은 전생을 독립운동과 민족문화 창달·국민 교육에 크게 이바지한 민족 지도자였으며, 이러한 공로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되었다.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정견대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과 성주군 수륜면의 경계에 위치한 정자로 도로변에서 바로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2007년 11월 조성되었으며, 멀리 백운동까지도 보이는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정견대(正見臺)는 ‘동국여지승람’에 근원을 둔 성스런 기품과 용모를 가진 가야산의 산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가가 만나 이룬 가야의 건국설화에 유래한다. 하늘의 신과 쌍의 신이 만나 이룬 가야의 건국설화와 같이 화합과 상생, 큰 고을 성주의 위용과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밝고 신령한 풍광과 운세를 가슴 가득 담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자를 조성하였다.
2024-12-13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조로 17 (행당동)
왕십리맛골목은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에 위치한 음식 거리로,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교통이 편리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랑하며, 직장인과 학생들의 모임 장소로 인기 있는 먹거리 명소입니다.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련1길 8
옥련생태공원은 세기 초에 겸재 정선이 그린 ‘쌍도정도’의 배경이 된 성주관아 건축물백화헌(白花軒)의 부속 시설인 쌍도정(雙島亭)을 복원해야 한다는 향토사학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여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공원의 연못 안에는 100종류의 수련과 물토란 등 수생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연꽃의 개화시기에 맞추어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면 수 많은 연꼿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서, 온갖수생식물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멋진 생태학습 체험을 할 수 있다.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5길 12-6
이 건물은 조선시대 소과에 급제한 생원 및 진사들이 모여 선현(先賢)을 숭모(崇慕)하고 서로 면학을 격려하는 장소인 사마소(司馬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조 21년(1588)에 성주성(星州城) 서문 밖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그 후 건물이 많이 낡아 후손들이 계를 조직하여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우고 이름을 연계당이라 하였다. 건물은 경사대지 전면에 봉하문(鳳下門)을 내고, 연계당·관리사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당은 정면 4칸·측면 2칸의 맞배집이고, 중앙마루 2칸을 중심으로 양측칸에 온돌방 1칸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으로 되어 있다. 온돌방 뒷벽에는 수장공간인 벽장(壁欌)이 있고, 온돌방 앞면과 마루 뒷면에는 각기 쪽마루를 두어 사용하고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쌓았고 자연석 초석에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1992년에 신축한 관리사는 정면 6칸·측면 1칸의 맞배집이고, 대문칸은 정면 2칸·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연계당에 보관되어 있는 『연계소영일기』는 1860년 이건 공사를 날짜별로 기록하고, 특히 건축 자재의 매입 및 가격·목수·토공(土工) 등의 수와 급료 등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 건축공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책자는 가로 22㎝, 세로 34㎝이며 1쪽에 9줄씩 모두 30쪽 분량으로 필사본(筆寫本)이며 표지는 『연계소영건일록(蓮桂所營建日錄)』이라 적혀 있다.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주읍 서문고개 성주여고 입구 맞은편에 있는 쌍충사적비는 임진왜란 때 영남지방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우다가 성주성(星州城) 싸움에서 전사한 제말(諸沫) 장군과 진주성(晋州城) 싸움을 돕기 위해 출전하다가 전사한 조카 제홍록(諸弘祿)의 업적을 새겨 정조 16년(1792)에 세운 비이다. 제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으며 성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제말의 조카인 제홍록은 숙부와 더불어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했다. 비는 전체 높이가 325㎝이며 높이가 216㎝·너비 79㎝·두께 37㎝ 규모의 비신을 받침돌 위에 올리고 이수를 얹은 모습이다. 이수에는 서로 엉킨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서유린(徐有隣)이 글을 짓고 이병모(李秉模)가 글씨를 썼으며, 성주목사를 지냈던 조윤형(趙允亨)이 전서했다. 쌍충사적비는 처음에는 지금의 성주초등학교 앞 길가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 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비가 방치되었던 것을 1940년 경에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3길 22
이 건물은 1936년에 도문환(都文煥)이 건립한 살림집으로, 결혼한 아들 도재림(都在琳) 내외가 분가하여 살도록 한 집이다. 택호(宅號)는 도재림의 부인이 배리(裵里)마을에서 시집온 데서 연유한다. 가옥의 건립자인 도문환(都文煥, 1887~1970)은 성주 지역의 선각적인 유림으로 계몽운동에 앞장 선 만산(晩山) 도갑모(都甲模, 1864~1937)의 아들로서, 1920년대 성주지역의 청년운동과 신간회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에 활동하였던 인물이다. 평기와로 우진각 지붕을 이은 동향한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ㄱ' 자형의 안채가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안채 전방으로 넓은 빈터가 남아 있는데, 이는 행랑채와 창고가 있었던 부지이며 주변으로 민가가 분포하고 있다. 가옥은 전체적으로 전통 한옥의 외관에 일본식 전통 가옥의 평면구조, 창호, 실내장식 등 2층 구조의 절충식 근대 가옥으로 한국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2024-12-13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심산로 95-6
이 건물은 조선시대 성주목 관아(官衙) 건물의 하나이다. 처음 건립된 성주목의 관아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선조 41년(1608)에 목사 송영구(宋英耈)가 지금의 성주초등학교 동북쪽에 사시헌(四時軒, 목사의 관사)과 함께 건립하였다. 효종 8년(1657)에 목사 최계훈(崔繼勳)이 지금의 군청자리로 이건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 개수(改修)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관아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의 건물만이 남았으며, 1994년 현 군청사 신축공사로 인해 군청사 뒤편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대청에는 성산관(星山館)을 현판하고, 대청 안쪽으로 절제아문(節制衙門), 사시헌(四時軒)을 현판하였다. 정면 5칸·측면 3칸의 팔작기와 건물로 오른쪽에 2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 건물의 정면은 주춧돌을 높게 하여 기둥모양으로 나열시켰고 마루바닥이 지면에서 높이 올라와 있는 것이 특색이다. 흔히 고상식(高床式)이라고 불리는 이런 구조는 마루를 주로 이용하는 남방건축에서 지면의 습기를 피하기 위해 짓는 방법으로 상주의 양진당(養眞堂)에도 같은 구조가 남아 있어 서로 비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