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네브펜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데네브펜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데네브펜션

데네브펜션

18.8Km    2024-11-12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우운길 158-8
041-672-3363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 몽산포 해변가에 위치한 데네브펜션은 통나무펜션과 주변에 100여 년 된 노송과 바다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향긋한 소나무 향에 정신까지 상쾌해진다. 바다가 그림처럼 보이는 데네브에서는 특히 몽산포 안목섬을 배경으로 하는 몽대포구의 아름다운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몽산포비치펜션

18.8Km    2024-02-27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달산포로 167-32
010-3233-7936

넓게 펼쳐진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한 몽산포비치는 전 객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낭만과 여유가 함께한 편안한 공간이다. 펜션의 넓은 정원에서는 즐거운 바베큐파티로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또한 펜션 바로 앞 수로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블루오션 리조트

블루오션 리조트

18.8Km    2024-02-21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포길 161
041-672-0188

충남 태안군 남면이 소재한 태안국립공원안에 위치한 블루오션 리조트는 몽산포 해수욕장내에 위치하여 초승달 모양의 백사장과 병풍처럼 둘러싼 송림 1천여평으로 국내 최고의 자연조건이 뛰어난 곳이다. 그 숲에서 퍼져 나오는 소나무의 진향이 서해바다와 오묘한 조화로움을 갖춘 사계절 종합 휴양지 이다. 동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폭 800m~1078m, 길이 10Km의 넓은 모래사장을 이용하여 해양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계절마다 나오는 싱싱한 생선회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여 객실 또는 야외 가든에서 조개구이 및 회를 먹을 수 있다.

레인보우캐슬리조트

레인보우캐슬리조트

18.8Km    2024-05-10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대로 333-7

레인보우 캐슬 리조트는 충남 태안군 남면에 자리 잡고 있다. 리조트에는 7개 동에 다양한 유형의 14개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부대시설로는 개별 바비큐 시설, 족구장, 수영장, 아로니아 체험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리조트 주변에는 몽산포해수욕장과 달산포해수욕장이 위치하고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

드림하우스

18.9Km    2024-11-15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포길 168
010-4433-1806

드림하우스는 서해의 몽산포해수욕장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변과 가까이에 있다. 드림하우스는 목조주택으로 커플과 가족, 소규모 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행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넉넉한 시설과 준비물 없이 찾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여러 가지 편리한 집기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드림하우스가 위치해 있는 서해한 최고의 몽산포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길이가 3.5km에 이르는 초대형 해수욕장을 자랑한다. 또한 바닷물이 빠진 후에는 재미있는 조개잡이 등 여러 가지 해산물을 직접 잡아 볼 수 있는 갯벌체험 현장으로도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몽산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송림숲은 현재 전폭적인 투자로 산책로까지 잘 꾸며져 있어 삼림욕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배낚시도 직접 운영하고 있어 즐거운 배낚시의 추억도 만들 수 있다.

몽산리석가여래좌상

18.9Km    2024-05-30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리

몽산리석가여래좌상은 남면 몽산리 산 182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어느 시기의 작품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불상의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한다. 충청남도 태안군 청계산 기슭에 위치한 죽사의 절터에 있으며 전체 높이는 1.03m이고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지정문화재로 현재 태안군이 관리하고 있다. 옷은 양어깨를 감싸 입고 있으며, 양발을 무릎 위로 올려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자세로 앉아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올려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했다. 불상의 뒤에는 불꽃무늬로 장식한 배(舟) 모양의 광배가 있는데, 그 안쪽에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2줄의 굵은 선으로 구분하였다. 머리 광배에는 연꽃을 겹으로 새겼고, 머리 광배와 몸 광배가 구분되는 좌우에는 구름무늬 위에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광배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기법이 잘 나타나고 있다. 대좌의 아래쪽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위쪽에는 활짝 핀 모양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연꽃무늬는 겹겹으로 된 꽃잎과 그 사이에 잎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 역시 통일신라시대 대좌 장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달산포해수욕장

18.9Km    2024-08-05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달산리 1211-10

달산포해수욕장은 충남 태안군 남면에 자리 잡고 있다. 백사장은 규사로 이뤄졌으며, 면적 21,000㎡, 길이 700m, 폭 30m이다.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바닷물 속 경사가 완만하다. 밀물 때는 조개 등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다. 해수욕장에는 야영지, 슈퍼, 숙박업소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인근에는 몽산포해수욕장, 블루오션리조트가 있다.

러빙유카라반캠핑장

러빙유카라반캠핑장

18.9Km    2024-07-17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삼선산수목원길 50

러빙유 카라반 캠핑장은 당진시 삼선산수목원 옆에 있다. 논밭과 푸른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위치한 감성 카라반 캠핑장이다. 신설 캠핑장이라 모든 편의시설이 깨끗하고 청결하다. 카라반의 마당은 모두 잔디로 되어 있어 어린이들이 마음껏 안전하게 뛰어놀기 좋다. 어린이들을 위한 대형 놀이 시설과 물놀이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연인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어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카라반 내부에는 변환 테이블, 크롬캐스트 TV, 냉난방기, 샤워장 겸 화장실, 2층 침대 , 전기장판(동절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드라이기, 샴푸, 린스, 바디워시, 핸드클리너, 휴지, 수건, 수저, 가스버너, 코펠 세트, 취사도구 등이 구비되어 있다. 카라반 뒤쪽으로 개별 바비큐장이 있어 프라이빗한 파티도 즐길 수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삼선산수목원, 왜목마을, 삽교호관광지, 신리성지, 솔뫼성지, 아그로랜드 태신목장, 합덕성당 등이 있다.

소나무리조트

18.9Km    2024-09-04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포길 179
010-7758-9338

서해의 몽산포 해수욕장에 위치한 소나무리조트는 단독식 원룸형으로 자연 그대로를 살린 목조 시설이다. 큰방인 바다동과 민박형 독채인 소나무동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커플, 가족뿐 아니라 단체가 이용할 수 있는 객실도 갖춰져 있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자유롭고 행복한 휴식으로 재충전을 할 수 있고, 변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행복한 쉼을 준다. 총 14개의 객실이 있고 침대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에는 족구장, 바베큐장이 구비되어 이용이 가능하고 갯벌 체험, 독살 체험과 낚시 체험도 가능하고, ATV, 해양레저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이종일선생생가지

19.0Km    2024-05-30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