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문화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고창문화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고창문화원

고창문화원

17.9Km    2024-09-03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천변북로 119

고창은 선사시대의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과 함께 백제가요인 방등산가와 선운산가의 이야기가 전하는 노령산맥 끝자락의 방장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다. 판소리, 농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고창읍성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풍부한 문화유산자원을 기반으로 고창문화원은 1963년 설립되었다. 고창 군민의 정서 함양과 예술적 소양을 배양함으로써 문화의 대중화에 노력하며, 향토 사료관을 운영,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고창문화원은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고창문화원에서는 수채화, 한춤, 문인화, 수필, 웰빙댄스, 민요, 서예, 장구 등 해 다양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청림리 석불좌상

17.9Km    2024-10-29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

부안군 상서면 개암사에 있는 조선 전기 석조 지장보살 좌상이다. 청림리석불좌상은 구 청림사지에서 개암사로 옮겨졌다. 이 석불좌상은 목과 가슴 사이가 깨진 것을 시멘트로 접합하여 원형을 알 수 없고 마멸도 심하여 장신구가 어떠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목 아래쪽에 돌대가 조각된 것으로 보아 목걸이가 조각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와 등 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갠 뒤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곧게 펴 맞대고 있다. 모은 손바닥으로 구슬을 감싸 쥐고 있는 전형적인 두건 지장보살상이다. 좌불좌상이 있는 개암사 주변에는 복신굴, 우금산성, 울금바위 등이 있다.

고창옹기

17.9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장암길 20

고창옹기는 6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무공해 전통옹기로 500년 전부터 옹기(항아리) 마을로 널리 알려진 전북 고수면 자암리에 일찌감치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는 온 마을이 옹기 생산을 하였으나, 산업화에 밀려 지금은 고창옹기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며 무공해 전통옹기 제작품을 만들고 있으며, 옛 가마터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급속한 현대화와 더불어 우리에게 닥친 여러 산업공해 속에서 신음하는 현대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솔잎재와 약토를 1:1로 배합하여 무공해 유약을 직접 만들어 100% 살아 숨 쉬는 옹기(항아리)를 만들고 있고, 1년에 수차례에 걸쳐 국가공인 보건환경연구원에 중금속 함유 여부를 검사하고 있으며, 조상들이 써왔던 전통적인 방법으로 흙을 직접 수배해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근래에는 젓갈이나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 발효음식을 담을 수 있는 용기나 건강에 좋은 복분자주, 매실주, 솔잎주, 진액 등을 담는 용기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고창문화의전당

18.0Km    2024-08-22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11

고창문화의 전당이 건립된 2008년 12월 5일 이전까지 고창군의 문화 행사와 관련된 대표적인 전시·공연장은 1988년 착공하여 1990년 완공된 동리국악당이었다. 그러나 동리국악당은 총 500석 수용 규모에다 작은 무대로 인해 수준 높은 공연물을 유치하기에 부족함이 많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일반 기념 행사장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이에 갈수록 커져가는 고창군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고 최첨단 장비를 갖춘 625석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인 고창문화의 전당이 건립될 수 있었다. 고창문화의 전당은 고창군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계승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문화 예술 창작 활동의 장소를 제공하여 군민들이 다양한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함과 더불어 고창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고창농악의 [소고]와 [12발 상모]를 형상화한 건물외형으로 연간 100회 이상 공연, 전시, 영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연간 6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변산온천산장

18.0Km    2024-08-29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묵정길 83-6
063-584-4874

‘변산온천산장’은 바지락죽을 개발한 집이다. 바지락죽은 부안 연안에서 채취한 바지락을 깨끗이 씻어 인삼과 녹두쌀을 넣고 끓인 죽으로 숙취해소, 간에 좋으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보양식으로 좋다. 변산온천산장의 바지락죽은 맛도 매우 담백하며 고소하기도 한 맛이면서 매우 독특하다. 그 외에 인기메뉴로 바지락회무침이 있는데 양배추와 오이와 바지락을 매콤하게 무쳐낸 음식이다. 공깃밥 추가 시 따로 기름장과 깨소금을 뿌린 대접을 준비해 주는데 같이 비벼 먹었을 때 풍미로 인해 맛이 배가 될 수 있다. 밑반찬은 여러 종류로 정갈하게 차려져 깔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장 내부는 단체석이 있어 단체 모임장소로 안성맞춤이다.

고창 자수

고창 자수

18.1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20
061-564-6992

고창 전통자수 전시 판매장에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공예품, 민속공예, 선물용품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전통자수전시 및 공방이 있다. 고창의 전통자수와 전통매듭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데, 기초부터 단계별로 준비되어 있어 각자가 원하는 대로 체험이 가능하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이다. 단체일 경우에는 사전에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고창읍성 도예체험장

고창읍성 도예체험장

18.1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20

한옥으로 지어진 편하고 쾌적한 체험공간으로 가마, 물레, 토륜기, 각종 도구 등 완벽한 시설을 구비한 곳이다. 실내, 실외 체험이 모두 가능하며 전통자기부문 명인의 강의를 받을 수 있다.

고창읍성한옥마을

고창읍성한옥마을

18.1Km    2024-10-02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동리로 128 한옥체험펜션
063-563-9977

고창읍성한옥마을은 고창읍성 내에 있는 관아의 객사를 재현한 한옥으로 총 7채의 기와집과 11개 객실로 구성되어 있다. 객실마다 대청마루와 마당이 딸려 있고, 내부에 화장실, 에어컨 등이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 고창읍성 둘레길이 있어 고풍스러운 성벽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산책할 수 있고, 도자기와 자수 체험장, 군립미술관, 판소리박물관, 선운골프장 등이 있다. 150대의 전용주차장도 있어 주차에 편리하다.

고창읍성

고창읍성

18.1Km    2024-05-09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1

고창은 우리나라에서 군 단위로는 최대의 고인돌 밀집 지역이다. 고창읍성(모양성)과 선운사, 그리고 동리 신재효와 미당 서정주의 고장인 고창은 삼한시대인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모로비리국”의 시초로 열리기 시작, 백제 때에는 ‘모량부리현’ 또는 ‘모양현’으로 불렸고 고려시대 이래 ‘고창현’으로 불렸다. 고창은 방장산을 긴 노령산맥을 등허리에 안고, 서해에 연해지면서 자리한 고을터이다. 특히 고창은 전북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 여맥이 이어져 일으켜 세운 곳이다. 방장산이 좌우로 펼쳐져 고창군 일대를 광활한 대지로 만든다. 고창은 풍수지리학상, 오행에 적합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드문 지역으로 동쪽과 남쪽이 높은 반면 서북쪽이 낮게 형성되어 통풍과 햇빛이 골고루 퍼져 농작물 재배는 물론 인간의 두뇌 형성에도 아주 좋은 인맥의 고장이자 예향으로 널리 알려진 고을이기도 하다. 고창의 산야는 전북특별자치도의 다른 시군에 비해 낮은 야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즉 비산비야 지역이다. * 연혁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호국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1965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가 4~6m, 면적은 50,172평으로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 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대로 복원해 오고 있다. * 축성 목적 산성은 성과 연결이 잘 되는 곳에 축성하게 되는데, 고창읍성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입암산성이 있으며, 입암산성은 나주진관과 더불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호남내륙에서 한양에 갈 때는 노령산맥인 갈재를 넘어야 했다. 그런데 갈재는 험준하고 봉변을 주는 곳이었다. 이러한 곳을 지키고 영광, 고창, 장성 등 부근 지역의 농산물과 해산물을 법성포를 통해 반출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입암 산성이 담당했었다. 서해안을 노략질하는 왜구도 입암산성에서 막아야 하는데, 입암산성과 법성포와 고창, 영광지역은 너무 멀어 입암산성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해 서해안 일대를 지키는 전초기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고창읍성은 이런 이유로 축성되었고 호남내륙을 왜구의 노략질로부터 지켜왔다. * 축성방식 축성에 사용된 석재는 거의 자연석이지만 초석, 대리석, 당간지주 등 어느 절에서 나온 듯한 석재들을 깨뜨려 쓴 것도 가끔 끼어 있다. 특히 북문인 공북루의 주춧돌 높이는 제각각이라서 1m쯤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땅에 깔려 기둥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도 있어서 이채롭다. * 고창읍성의 특징 조선시대의 읍성들은 평야 지대에 양면을 돌로 쌓아 만들고 성문 위에는 누각을 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를 지휘했으며 성내에서는 관민이 함께 생활하였다. 그런데 고창읍성만은 나지막한 야산을 이용하여 바깥쪽만 성을 쌓는 내탁법 축성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성문 앞에는 옹성을 둘러 쌓아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축성하였다. 또한, 성내에는 관아만 만들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 성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4개의 우물과 2개의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성벽에는 축성에 참여했던 고을 이름과 축성연대가 새겨져 있어 계유년(1453)에 전라 좌, 우 도민들이 모두 참여하여 축성했음을 알 수 있다. ▶ 답성(성밟기)놀이 성을 밟으면 병이 없어 오래 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행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또한 엿샛날이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날에 답성 대열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 승천한다.” 고 한다.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아 성 입구에 다시 그 돌을 쌓아 두도록 되어 있다. 고창 읍성이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축조되었다는 전설적 사연으로 답성도부녀자들 만의 전유민속이 되었지만 흙 한 줌, 돌 한 개도 모두가 부녀자들의 손과 머리로 운반, 구축되었던 당시의 대역사를 되새겨 보는 뜻으로 돌을 머리에 이고 도는 풍습이 남아있다. 또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관습은 여인네들의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뜻은 이 성곽의 축성 배경이 왜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유사시의 석전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예지로서 머리에 인 돌을 성안에 쌓아 두고 갔다는 전설도 모두가 호국의 예지를 빛내 주는 이야기들이다. 고창군에서는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을 군민의 날로 정하고「모양성제」와 함께 답성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 수문장 재현 음력 9월 9일을 전후하여 4일간 ‘모양성제’가 열리며, 이때 조선시대 관군복장을 갖춘 수문장이 고창읍성을 수호하는 장면을 재현된다. 고창 읍성의 성곽 주위에 수십 개의 옛 진영 깃발을 꽂아 고을수령(현감)이 재임하던 시절 관아의 위엄을 갖춰놓고 형형색색의 멋진 조선시대 관군복에 칼을 든 수문장과 흑백색의 순라복장에 창을 든 포졸을 공북루에 배치했다. 특히, 스스로 관군이 되어보기를 원하는 관광객을 위해 관리사무소에 관군복을 비치해 놓고 이를 빌려줌으로써 사진촬영을 통해 관군으로서의 체험도 직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고 있다. ▶ 척화비 이 비는 조선말기에 대원군이 펼친 쇄국정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병인년에 비문을 만들고 신미년(1871)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 임을 온 백성에게 경계한다.” 라는 뜻이다. 이 비문을 지은 병인년에는 천주교에 대한 탄압도 도화선이 되어 병인양요가 발생하였고, 비를 만들어 세우 신미년에는 미국군함이 강화도를 침범한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 관아건물 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하였다.

청동기 시대로 떠나는 여행

청동기 시대로 떠나는 여행

18.1Km    2024-01-18

고창은 전남 화순, 인천 강화와 함께 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장이다. 2,000여 기가 밀집한 고인돌 군락과 함께 고인돌의 역사와 구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고인돌박물관에서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시간여행을 즐겨보자. 고인돌 군락 주변으로 여러 구간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 코스로도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