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Km 2024-02-02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로 16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앞 2층에 있는 중국 요리인 도삭면 전문점이다. 주메뉴는 우육도삭면으로 뜨끈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 부드러운 소고기의 조화가 일품인 면 요리다. 도삭면은 밀가루 반죽을 얇은 판모양의 살짝 굽은 칼로 비스듬하게 썰기 때문에 마름모 모양의 특이한 단면을 가지게 된다. 굵은 부분은 두툼한 면의 질감을 느낄 수 있고 얇은 부분은 국물이 흠뻑 배어들어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으며 식감은 쫄깃하다. 육수는 소고기 양지머리와 사골을 장시간 우려내어 깊고 진한 맛을 낸다. 소고기는 부드럽게 삶아져 육수와 어우러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도삭면 외에도 비빔면인 유포도삭면, 계란야채볶음도삭면, 꿔바로우, 소고기볶음밥, 새우계란볶음밥, 요우티아오튀김, 마라라롱샤 등 다양하다.
6.0Km 2024-12-09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 556
도봉도서관은 공기 맑고 풍경 좋은 도봉구 북한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특별시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이다. 1981년 12월 개관한 이후 40여년간 한결같이 책과 함께 지역 주민이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여 제공하고 각종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널리 보급해 오고 있다. 도서관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며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인근에는 백운초등학교와 덕성여대가 함께 있어 학생들이 이용하기 좋다. 수도권 지하철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 1번 출구에서 약 350m 거리에 있다.
6.0Km 2024-11-29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진관사는 동 불암사, 서 진관사, 남 삼막사, 북 승가사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아 왔다. 진관사(津寬寺)의 연혁은 고려 제 8대 현종(顯宗)원년 서기 1010년에 현종이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서 창건 하였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명령에 의하여 조종선령(祖宗仙靈)과 순국충열(殉國忠烈), 희생당한 고려 왕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춘ㆍ추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장엄하게 베풀어 왔었다.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들을 위한 독서당을 진관사에 세우고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과 같은 선비들을 독서하게 했다고 한다. 한국 동란 때 공비소탕의 일환으로 사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 1963년 비구니 진관(眞觀)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30여 년간 복원 불사를 하여 지금의 가람으로 일신 중창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독성각, 나가원, 홍제루, 동정각, 동별당, 요사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로는 미륵보살과 제화갈화보살을 모셨으며,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십대 대왕을 모셨으며, 나한전은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십륙나한상을 보셨다.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역사를 자랑하는 진관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일상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면서 오늘도 부처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6.0Km 2025-04-08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54길 127 (진관동)
삼천사는 661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지만 최근의 고고학적 조사를 거치면서 ‘三千’이 아니라 ‘三川’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삼천사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집결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전해지는 등 병화(兵禍)를 피하지 못하였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대사가 다시 복원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성운스님이 주석하여 경내에 있는 천년고불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을 보물로 지정받으면서 순차적으로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원래의 절터를 대상으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를 전개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들을 찾아내는 성과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