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Km 2024-06-28
경기도 화성시 쇠틀길 59-21
오르토그릴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수기리에 있는 소고기 전문 레스토랑이다. 육회 샐러드와 스테이크로 유명하지만 파스타, 리소토, 피자류의 이탈리아 음식을 같이 판매한다. 식사하는 고객들에게는 아메리카노나 탄산음료 등은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그 외 음료들은 할인 판매하고 있다. 식당 내부는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세련미를 높였고 여유 있게 배치된 좌석에서 조용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양식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이지만 와인 외에도 소주나 맥주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 취향에 맞는 주류도 즐길 수 있다. 테라스도 있어 날씨가 좋은 날엔 테라스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즐길 수도 있다. 매장 뒤편으로 넓은 잔디밭이 있어 식사 후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주차장은 건물 앞쪽과 옆쪽에 있어 언제든지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대표 메뉴로 등심스테이크, 페스카토레 로제 스파게티, 알리오 올리오, 아란치니, 해물로제 리소토, 직화 불고기 샐러드 피자, 씨푸드 피자 등이 있다. 재료소진시 브레이크 타임이 생길 수 있다.
15.2Km 2024-05-10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조선 제 22대 왕 정조는 효심이 각별했던 임금이다. 왕위에 있는 동안 보여준 지극한 효심은 백성에게까지 추앙을 받았다. 그는 비명에 숨져간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옮겨 묘호를 바로 세우는 등 선친의 원혼을 위로하는 한편 1년에도 수차례 능 참배길에 나섰고 가식없는 효심으로 백성을 감복시켰다. 정조는 사후에도 부친의 능이 있는 지금의 화성시 화산기슭에 묻혔다. 수원시 교외 약 8km쯤에 자리잡은 융건릉(隆健陵 사적)은 부친 사도세자(장헌세자) 장조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헌경왕후)를 모신 융릉(隆陵)과 정조대왕과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건릉(健陵)을 말한다. 융릉은 화산의 서남쪽, 건릉은 서북쪽 기슭에 들어 있어 모두 서향이다.
그래서 해질녘의 분위기가 더욱 그윽하고 깊은 느낌을 안겨 준다. 이들 능 입구에는 재실이 있고, 능 주변은 하늘을 가린 짙은 송림과 상수리 나무숲이 이루어져 있어 역사교육과 숲길 산책으로 권장할 만한 곳이다. 능을 다 돌아보는 데는 숲속 오솔길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융건릉과 함께 들러 보아야 할 곳으로 기복사인 용주사가 있다. 정조는 능에서 1.5km인 용주사를 증축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 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앞 회양목은 수령이 무려 200여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다.
* 융릉
융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1735~1762)와 그의 비인 헌경왕후(獻敬王后)(1735~1815) 홍씨가 묻힌 곳이다. 1749년(영조 25년) 부왕을 대신하여 서정을 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의 무고에 의해 영조의 미움을 사 영조 38년 (1762)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그후 영조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라 하였다.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광무 3년)에 다시 장조로 추존되었다. 장조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 배봉산 (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고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뒤 능호를 융릉으로 높였다. 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1744년(영조 20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장조가 세상을 떠난 뒤 혜빈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고,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황후에 추존되었다.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을 남겨 궁중문학의 효시가되었다. 웅릉은 합장릉으로 동,서, 북 3면에 곡장을 두르고,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은 생략되었다. 그러나 방위 표시를 위해, 병풍석 위에 꽃 봉오리 모양의 인석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봉분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2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하였는데, 추존 왕릉임에도 무인석까지 배치한 점이 중요하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인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정자각까지는 두 사람이 걸을 수있는 폭의 신도와 어도로 구분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융릉은 누가 보아도 능 조영에 정성을 들인 정조의 효심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 건릉
건릉은 정조(1776-1800 : 재위, 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씨가 묻힌 곳이다. 정조는 장조의 아들로 1759년 (영조 35년)에 세손에 책봉되었다.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 세자(추존)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영조 51년) 연로한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하였고, 영조가 승하하자 1776년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아버지인 장헌 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기에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영조 이래의 기본 정책인 탕평책을 계승하였다.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하여 새로운 혁신정치를 펼쳤다. 또한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로운 활자를 만들었으며, [속오례의][국조보감][대전화통][증보동국문헌비고] 등의 많은 서적을 편찬, 간행하였다. 재위기간은 정조의 학문적 소양에 터전한 적극적인 문화 정책의 추진과 선진문화인 중국의 건륭 문화의 영향 등으로 문화적인 황금시대를 이루어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루었다.
효의 왕후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 (영조 38년) 세손빈으로 책봉 되었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821년 (순조 21년)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으로 동,서,북 삼면의 곡장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다른 상설내용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 하였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 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안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홍전문에서 정자각까지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 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신문 밖으로 능의 수호, 관리를 위한 재실이 있다.
* 장조 (사도세자)
1) 조선조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선으로 영빈 이씨의 소생이며 영조 11년(1735)1월 21일 창경궁에서 탄생
2) 영조 12년(1736년) 2세에 왕세자로 책봉되고 영조 25년(1749년)에 수렴청정
3) 영조 38년(1762년)윤 5월 21일 뒤주에 갇혀 28세로 승하
4) 시호를 사도라 하고 7월 23일 경기도 양주군 남면 중량포(현 동대문구 답십리) 배봉산에 장사 지내여 원호를 영우원이라 하였다가 27년 후인 정조 13년(1789년) 10월 7일 이곳 화산으로 천장하고 원호를 현륭원이라고 고침
5) 광무 3년 10월에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장종이라 하고, 능호를 융릉이라 하였다가 같은해 11월에 시호를 의황제라 추존하고 묘호를 장조로 고침
*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
1) 풍산 홍씨로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영조 11년 (1735년) 6월 18일 탄생
2) 영조 20년 (1744년) 10세때 세자빈으로 책봉
3) 순조 15년 (1815년) 12월 15일 81세로 승하하여 3월 3일 현륭원에 합장
4) 정조 즉위해 (1776년)에 궁호를 혜경궁이라 하고 광무 3년 (1899년) 경의왕후로 추존하고 같은 해 11월에 황후로 추존함
* 정조 (조선 22대 임금)
1) 정조는 장조(사도세자)의 아들로 재위 24년(1776-1800년)동안 탕평정치를 실시하고 선정을 베풀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2)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산으로 어머니는 현경의황후(혜경궁 홍씨)이며 영조 28년(1752년) 9월 22일 탄생
3) 영조 35년(1759년)왕세손으로 책봉되고 영조 51년 (1775년)에 수렴청정하고 이듬해(1776년) 3월 10일 경희궁에서 즉위
4) 정조 24년(1800년) 6월 28일창경궁에서 49세로 승하
5) 묘호를 정종이라 하고 11월 6일 융릉 동쪽 2째 능선에 장례하였다가 22년 후인 순조21년(1821년) 9월 13일 현 위치로 천장
6) 광무 3년 11월 선 황제로 추존하고 묘 호를 정조로 고침
* 효의선황후
1) 청풍김씨 청원 부원군 김시묵의 딸이며 영조 29년 (1753년) 12월 13일 탄생
2) 영조 38년 (1762년) 2월에 왕세손 빈으로 책봉됐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
3) 순조 21년 (1821년) 3월 9일 창경궁에서 69세로 승하하여 9월 13일 건릉에 합장
4) 광무 3년 11월 효의선왕후로 추존됨
15.2Km 2023-09-21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화성 융릉과 건릉」은 추존 장조의 황제(사도세자)와 헌경의 황후(혜경궁) 홍 씨를 모신 융릉과, 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 김 씨를 모신 건릉이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능역제도와 정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곳에는 융건릉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문화관이 있으며, 왕릉을 같이 걸으며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정리가 잘 된 조선왕릉숲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로 유명하다. 매표소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융릉과 건릉이 위치해 있어 두 곳을 다 돌아보려면 1~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매표소를 지나면 융건릉에 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놓은 사진들이 전시된 역사문화관이 있는데 왕릉을 돌아보기 전에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제사에 쓰이는 물품을 보관하는 재실 옆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비자나무가 있다. 융건릉 입구 가까운 위치에 공영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용이하며, 휴무일이 공휴일인 월요일과 겹치면 그다음날이 휴무이다.
15.2Km 2024-09-20
경기도 화성시 진안동
화성 진안동에 위치한 다람산공원은 진안도서관을 끼고 있으며 봄에는 꽃을 보기위해서, 여름에는 물놀이와 인공폭포를 보기 위해서, 가을은 선선한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 겨울에는 가벼운 운동 겸 산책 삼아 사계절 내내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동네 동산 규모의 야산을 개발하여 조성된 공원과 도서관, 체육시설을 갖춘 다목적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 놀이터에는 다람쥐를 형상화한 놀이 기구와 미끄럼틀, 모래놀이장이 있고, 매스컴에서 한동안 유명했던 오징어 게임과 팔자 놀이, 깽깽이 놀이가 바닥에 그려져 있어 아이들에게 우리 고유의 놀이 문화를 가르쳐 주며 어른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다람산공원 중앙 언덕에는 다남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한여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휴식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며 나름 전망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다람산공원 내에는 잔디축구장과 족구장, 육상 트랙이 마련되어 있어 사계절 츠포츠를 할 수 있고, 다양한 운동기구들과 깨끗한 공중화장실도 갖추고 있어 산책코스, 운동코스, 혹은 동네 풍경을 즐기기 위한 코스로도 좋은 곳이다.
15.2Km 2024-02-07
경기도 화성시 풀무골로60번길 4-16
남도한정식 수향은 화성시 풀무골에 있는 한정식전문점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남도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집이어서 푸짐하게 한 상을 받는 즐거움이 있다. 정식에는 향긋한 들기름으로 양념을 한 다양한 나물과 남도 김치, 홍어삼합, 계절전, 잡채 등의 일품 메뉴들이 반찬으로 나온다. 다양한 정식 중 하나를 주문한 후에 홍어삼합, 낙지탕탕이, 육전 등은 추가 주문할 수 있다. 예약을 하면 기다리지 않고 식사할 수 있게 준비해 준다. 내부가 넓어 단체모임, 가족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즐길 수 있다. 주차는 매장 앞에 전용 주차장이 있어서 편리하다.
15.2Km 2023-10-04
경기도 화성시 중동
주니어천문스쿨은 어린이들에게 별과 우주에 대한 지식을 이론, 실습, 체험이라는 형태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곳이다. 2014년 천안을 시작으로 동탄, 세종, 수지, 대구점이 차례로 문을 열었으며 정기 프로그램, 가족 프로그램, 단체 프로그램, 개인 프로그램, 자유학기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3년 교육과정으로 구성된 정기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 천문학과 항공우주학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며 관측과 실습,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정규과정이 부담스럽다면 개인 프로그램이나 방학 특강, 주말 가족체험을 통해, 가족들과 함께 쏟아지는 별들을 감상하며, 도심 속 밤하늘 아래서 우주 이야기를 듣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5.2Km 2024-10-08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대림동산길 36
안성맞춤가족공원은 전원주택 단지 조성을 목적으로 전망 좋은 구릉 지대에 자리한 공원이다. 답답하지 않고 탁 트인 공간에서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산책길은 잘 정돈되어 있고 옆으로는 잔디밭과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어 상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안성맞춤가족공원에는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화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중앙공원에는 분수대와 아이누리 놀이터, 농구장, 배구장, 족구장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고 야외 운동기구들도 있어 가족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 분수 놀이터는 음악 분수라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안전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중앙 송림 속에 죽마루와 야로정 두 정자가 마련되어 있고, 공원 내 대림동산 도서관이 있어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15.2Km 2024-08-28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1919년의 3·1 운동은 개신교가 한국민족주의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개신교는 천도교-불교와 함께 3·1 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독립만세시위 중 상당 부분이 개신교신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만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한 피해도 많았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경기도 화성시의 제암리교회이다. 일본 경찰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제암리교회에 신자들을 모이게 한 후 문을 폐쇄하고 교회에 불을 지르면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이 때문에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4월 5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교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1905년 8월 제암리 이장이었던 안종후의 주도로 설립된 제암리교회는 동족부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유난히 강한 단결력을 지녔는데 3·1 운동 때도 이 같은 성격은 그대로 나타났다. 일본 경찰은 이어 제암리의 가옥 30여 채를 불태우고 5백 m 떨어져 있는 고주리에서 천도교 신자 6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워버렸다. 이 같은 만행으로 이날 제암리일대에서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10여㎞ 밖까지 퍼져 나갔다고 전한다.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이 일어난 후 신자나 일반인들은 일본의 감시 때문에 사건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사건을 전해 들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며칠 후 불탄 교회에서 희생자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인근 공동묘지입구에 묻을 때까지 방치됐다. 제암리교회는 1919년 7월 자리를 옮겨 다시 건립됐고, 1938년 현재의 위치에 기와집 예배당이 만들어졌지만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은 광복 후까지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사건 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된 [3·1 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 9월에는 일본의 기독교인과 사회단체들이 속죄의 뜻을 담아 보내온 1천만 엔의 성금으로 새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됐다. 또 1982년 9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 발굴작업이 실시돼 교회 옆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으며, 다음해 7월 기념관과 새 기념탑이 세워졌다.
15.2Km 2024-01-11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화산로 27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메밀막국수와 싱싱한 국물의 바지락 메밀칼국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원래 메밀막국숫집으로 출발했으나 2001년부터 메밀칼국수를 출시하여 지금은 막국수보다 칼국수 손님이 더 많은 식당이다. 직접 뽑은 생면이 특징이며 면수도 제공된다. 한림 용인 CC 근처에 있어 운동을 끝내고 식사를 하러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