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여 정보화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두여 정보화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두여 정보화마을

12.7 Km    1976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용기길 66

두여 정보화마을은 호남고속도로와 1번 국도가 인접한 곳으로 지역 주민들의 정보화 참여 및 지지율이 높으며 두여 이장단, 농민 후계자, 시설원예 작목반 등 여러 자생 단체가 구성되어 활기차고 풍요로운 농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익산시에서 주관하는 농촌 선진지 견학 및 농민 교육 등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으며, 마을 내 두여사랑컴 동호회를 운영하여 정보화 의지를 대변하고 있으며 현재도 꾸준한 컴퓨터 교육으로 인터넷 활용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두여 정보화마을에서는 발전하는 현대사회에 발맞춰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아카시아꽃 튀김 만들기, 딸기 따기, 감자 캐기 및 크로켓 만들기 등 체험프로그램을 통해서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산나그네캠핑장

연산나그네캠핑장

12.9 Km    1     2023-08-09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선비로866번길 166-4

나그네캠핑장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논산시청을 기점으로 논산대로와 백일헌로를 거쳐 약 30이면 도착한다. 이곳은 고즈넉한 농촌의 논밭을 지나면 나오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수목이 우거진 숲 속에 요새처럼 조성된 캠핑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저곳에 시선을 옮기다 보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캠핑장은 20면의 자갈로 이뤄졌으며, 사이트 크기는 가로 9m 세로 8m다. 사이트 주변에 나무가 빼곡해 여름철에 캠핑을 만끽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화장실과 개수대는 각각 2개소씩 설치했고, 샤워장은 곳곳에 6개소를 마련했다.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지만 소형견에 한해 가능하다. 캠핑장 인근에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더힐 cc 등 관광지가 있고, 공주의 특산물로 만든 먹거리를 제공하는 식당 등이 있다.

자명사(익산)

자명사(익산)

13.0 Km    17733     2024-04-3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을동길 76-12

자명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우슬산에 자리한 작은 산사로 비구니 수행 정진 도량이다. 1943년에 승려 진명이 자명사를 중건하고 1944년 사찰 동쪽 입구에 세운 사적비에 따르면 자명사는 신라 시대인 678년(문무왕 18)에 승려 선설이 창건하였고 당시 이름은 자웅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으며, 그 뒤 조선 시대에 용안읍에 사는 권세가 민인재가 자웅사에서 소 우는 소리가 읍내에까지 퍼지는 꿈을 꾸고는 기이하게 생각하여 절의 이름을 자명사로 고쳤다고 한다. 현재 사찰 경내에 신라 시대의 유물이 전하는 것은 없지만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 토기편 등이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임을 증명하고 있다. 자명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범종각이 있고, 그 외에 요사채 2동과 쌍사자 석등 등이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익산시 향토 유적으로 지정된 자명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 안에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송불암(논산)

송불암(논산)

13.1 Km    18489     2023-11-23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황룡재로 92-18

송불암(논산)은 충남 논산시 동부 연산면 소재지 근처에 자리한 작은 태고종 사찰이다. 이곳은 소나무와 불상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곳이다. 송불암이라는 명칭은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불암이 위치한 자리에는 본래 고려시대부터 석불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1946년에 송불암으로 재건되었다. 이곳의 미륵불 불상은 고려 후기 내지는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가슴 부분에서 U자형을 이루었고, 옷자락의 주름은 얕은 선으로 조각하여 발목까지 내려왔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몸의 측면에 붙이고 있다. 이러한 미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송불암(논산)은 국도 1, 4호선과 지방도 697호선에서 황룡재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호남고속도로 지선 양촌하이패스IC와 논산천안고속도로 서논산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연산역, 연산시장, 온빛자연휴양림, 계룡시 등이 있다.

부여 신암친환경마을

부여 신암친환경마을

13.2 Km    21919     2024-01-08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신암로 178

부여군 초촌면 소재지에서 북서쪽 골짜기를 따라 승용차 기준으로 15분 정도 들어가다 보면 신암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바위가 많이 나온다 하여 신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뒷산에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지키던 청마산성이 남아있고, 인근에는 청동기 유적인 송국리 선사 취락지가 있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골짜기 안에 자리한 마을의 경관이 포근하다. 660년 백제 멸망 후에는 사비성 내 주민 중 일부가 이 마을에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은 또한 친환경농업을 선도하는 친환경마을이기도 하다. 우렁이 농법으로 벼를 재배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딸기,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수박 등 유기농 채소를 생산하여 소비자와 직거래하고 있다. 주변에는 청마산성, 송국리 선사 취락지 외에 부여 능안골 고분군, 부여 왕릉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삼세오충렬사

13.2 Km    1594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68

* 전라북도 기념물 삼세오충열사 *

삼세오충열사는 전북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8월 3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세오충열사는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전라도 용안현 출신으로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대에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7년(1681)에 충열사를 세웠다.

*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

관리 사무소를 지나면 광장입구에는 정문인 충신문이 있다. 충신문을 지나 올림픽기념 숲을 걷다보면 외삼문인 복절문에 이르고 복절문 좌측에는 기념관인 영국관이 있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본사우인 삼세오충열사에 이른다. 여기에는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우측에 직과 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삼세오충열사의 현판은 여산 권갑석 선생이 쓰셨다. 삼세오충열사를 나와 우측으로 가면 신도비와 오응정의 묘가 있고 정려각이 있다. 최근에는 모충제를 건립하였다. 충신문의 우측으로 가면 오충신의 묘와 오응운, 오응태, 오하몽, 오석근, 오식 등 직계선조의 묘가 있고 오영우, 오사고, 오희, 오사만, 오영수 등을 모신 삼신단이 있다.

하이마트 논산점

하이마트 논산점

1.3 Km    0     2024-03-24

충청남도 논산시 중앙로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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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정

13.5 Km    14794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태성1길 199

수덕정은 여산면 태성리 화산 중턱, 남서쪽으로 현천저수지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정사각형 정자로 조선 고종 때의 문신 농은 송기인의 뜻을 받들어 1938년에 건립하였다. 초석은 대리석을 흘림기법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높이 67㎝의 원형 장초석이며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평면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정방형이다. 마루는 우물마루로서 지면에서 90cm 떨어져 있고 주위에는 난간을 시설했다. 난간은 띠장과 지방 사이에 몇 개의 각재를 끼워 간단히 구성했다. 전면은 출입을 위해 난간이 끊어져 있고 그 앞에 두 단의 콘크리트 계단이 각각 놓여 있다. 정지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함석으로 차양을 덧달았으며, 전통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일제 강점기 그 당시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자 바로 옆에는 농은 송기인 선생의 커다란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송기인은 호가 농은이고 본관은 여산이며, 근검절약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고종 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몽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후에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 장례원 좌장례에 임명되었다.

용안향교 대성전

용안향교 대성전

13.5 Km    1555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용안교동1길 34-11

용안향교 대성전은 용안향교의 조선시대 전각이다. 용안향교는 고려 말에 창건된 향교로 익산 지역 4개의 향교 중에서 창건 연대가 가장 빠르다. 향교는 고을의 크기에 따라 대설위, 중설위, 소설위로 나뉘었는데, 용안향교는 소설위 향교에 해당하였다. 임진왜란 후 중건된 용안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다섯 성인(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나라 때의 유학자 4현인(주돈이, 정호, 정이, 주희), 우리나라의 유학자 18현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용안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전면은 개방하여 제례의 편의를 고려하였으며 건물 내부에는 마루를 깔았다. 기단은 높게 조성하였으며 그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 상부에 조각된 여러 부재로 짜인 공포는 1출목 2익공 구조이다. 공포의 조각 수법이 화려하며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 준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과 도리 하부를 받치는 장여 사이에는 화반을 설치하였다. 문은 정면에만 있는데 가운데 칸에는 2짝 판문을 달았으며, 좌우 칸에는 외짝 판문을 달았다. 나머지 삼면은 모두 창호 없이 벽체로 처리하였는데 하부에 화방벽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이다.

용안향교

13.5 Km    154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용안교동1길 34-11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용안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용안향교는 1391년(공양왕 3) 현재 위치한 곳에서 약 600m쯤 떨어진 용안면 중신리에 처음 세워졌다. 1416년(태종 16)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으며,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다. 1927년에 화재로 대성전만 남고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961년 명륜당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 전사청, 수복실 등이 있다. 현재 대성전에는 공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소장 전적으로는 판본 19종 30책, 사본 5종 5책 등이 있는데, 이 중 필사본인 [유림록], [향약] 등은 이 향교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