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우화루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화암사 우화루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화암사 우화루

14.1 Km    1836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화암사우화루는 불명산 자락 화암사에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우화루는 화암사의 정문 역할을 하는 건물로서 경내 및 극락전으로 가기 위한 입구에 자리한다. 우화루 정면은 높은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놓은 2층의 구조이나 뒷면은 평범한 단층 구조를 가진 공중누각식의 형태로서 자연적인 지형과 조화를 이루어 선인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화암사에서 우화루뿐만 아니라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을 볼 수 있으며,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하앙식(처마 무게를 받치는 건축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해 지렛대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더 길게 낼 수 있도록 한 것) 건축물이다.

화암사(완주)

14.1 Km    23321     2024-05-13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사찰로, 행사보다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유서 깊은 전통사찰이다. 화암사의 창건자 및 창건 연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중창비에 원효와 의상이 이 절에 머물면서 수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창건 이후 부분적인 중건, 중수를 이어오다 1425년 전라 관찰사 성달생의 시주로 해총이 중창하였으며, 1440년 극락전을 완성하였다. 이때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다. 소실된 후, 여러 번 중창하였고 1711년에 극락전 등을 중건하였다. 화암사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산신각, 우화루, 적묵당,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내에 있는 주요 문화재로는 화암사 동종, 화암사 중창비, 완주 화암사 괘불도 등이 있다.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14.2 Km    36912     2024-04-04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 김장생을 제향한 서원,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 인조 12년(1634) 이곳에서 1.5km 떨어진 숲말에 세워졌었다. 현종 원년(1660)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물이 뜰까지 넘쳐들어 오므로, 고종 17년(1880) 현재의 자리인 임리 74번지(서원말)로 옮겨지었다. 고종 3년(1865) 서원철폐령에서도 제외된 서원이었다. 소슬 3문으로 꾸며진 입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양성당 좌측에 응도당 그리고 사우는 양성당 후면에 있고, 장판각, 정회당, 산앙루가 있다. 유림들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사우의 전면은 1칸통을 개방하여 전퇴를 두었고,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퇴는 전돌 바닥이다. 전면 기둥사이에는 사분합 띠살문을 달고 옆면과 뒷면은 회벽이다. 공포의 구성은 이익공외출목과 동일한 수법으로 짜여져 있다. 내부의 양봉은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창방 위에 설치된 화반형의 초각반은 기둥 사이마다 1개씩이다. 지붕가구는 퇴고주를 세워 퇴량과 대들보를 걸었는데 용재는 새우처럼 휘어진 것을 썼다. 대들보 위에 일종의 포대공을 얹어서 퇴고주와 함께 종량을 받쳤으며 다시 종량위에 파연대공을 두고 종도리를 받쳤다. 사우에는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여 김집 송준길 송시열선생 등 문묘에 배향된 네 분만을 모시고 있는 보기드문 선정 서원이다. 돈암서원비문에 의하면 방, 대청, 툇마루, 행랑을 갖춘 응도당이 있었고, 응도당의 왼쪽에 거경제 오른쪽에 정의재가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그 건물이 어느 것인지를 분간하기도 어렵고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 돈암서원의 의의와 평가

광산김씨는 연산 지역에서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한 호서 명문 사족가문이다. 이런 이유로 돈암서원은 서인-노론계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1871년 서원 훼철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보존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특히 김장생이 타계한 후 제자와 문인들이 만든 돈암서원책판(遯巖書院冊版)이 등 여러 자료가 남아 있다.이렇듯 돈암서원은 호서 지역은 물론 기호 지역 전체에서 존숭받는 서원으로, 김장생을 제향한 서원 중에서 가장 비중 있고 영향력 있는 서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까지 잘 보호, 관리되고 있으며 지역사를 연구하는 향토 자료로서도 보존적 가치가 높다. 나아가 호서 지역 사림의 동향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며, 당시 실질적인 세력권자인 김장생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 소유 - 광산김씨 종중

고산미소판매장(완주한우협동조합)

14.2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남봉로 135

완주군 고산면에 위치한 완주한우협동조합 고산미소한우는 250여 조합원으로부터 제 값에 한우를 매입하여 중간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한우를 제공한다. 그로인해 완주 한우농가는 생산비를 보전하여 지속적으로 한우를 키울 수 있게 되고, 소비자는 품질 좋은 한우를 믿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완주한우협동조합은 지역내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가며 소비자들에겐 질 좋은 한우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데 앞장설 것이다.

완주문화원

완주문화원

14.2 Km    1817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7길 43

문화원은 지역축제, 민속행사 등 전통문화의 발굴·보존과 각종 문화행사를 주최하는 등 지역 문화진흥을 위한 문화사업과 전통문화를 익힐 수 있는 문화학교를 열고 있다. 완주문화원은 완주의 구전설화부터 완주의 문화재, 지명, 완주의 인물과 명산, 완주 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와 동학농민혁명까지 다양한 주제로 사료지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완주군 읍면농악경연대회, 문화답사, 완주문화 [만경강] 소식지 발간, 세시 풍속 행사 지원 사업,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 지원 사업,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 인문 강좌, 전래놀이 체험 마당 운영지원, 완주역사 유물 찾기 등의 업무를 실행하고 있다. 문화학교에서는 레트로장구, 전통민화그리기 강좌가 운영되고 있어 지역민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고산미소시장/고산시장 (4, 9일)

고산미소시장/고산시장 (4, 9일)

14.2 Km    1083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남봉로 134
063-262-0119

고산시장은 1964년 개설된 시장으로 완주군 고산 지역 및 인근 5개 면에서 생산되는 지역 농축산물 및 공산품의 교환을 목적으로 개설된 곳이다. 이후 오일장과 함께 문화 관광형 테마장터로 2013년에 신축 개장한 곳이 고산미소시장이다. 고산시장은 4일과 9일 오일장이 열리는 전통시장이고, 고산미소시장은 오일장 곁에 조성된 신시장으로 한우, 유제품, 수제햄버거, 나무공방 등 30여 개의 제조 공방형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오일장인 고산시장은 도로 양옆으로 점포와 노점상의 형태로 채소, 과일 곡류 등 생활필수품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인근 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특산물을 주로 판매하며, 주요 품목으로는 곶감, 대추, 마늘, 양파, 한우 등이 있다. 특히 고산면과 인근에 자리한 비봉면은 한우 사육 농가가 많은 곳으로 옛날부터 한우 유통이 활성화되었던 곳이다. 상설시장인 고산미소시장은 공연장과 광장을 중심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주말에는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많은 고객이 방문하고 있다. 고산 지역 인근에서 생산하는 농산물과 한우의 유통을 활성화 하고 있으며, 구시장과 달리 음식점, 카페 등 상시적으로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 위주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서비스적 측면에서는 고산미소시장은 체험, 주말장터, 청소년 교육, 귀농 등의 문화를 상품화함으로써 새로운 운영 형태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인구와 청소년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시장의 빈 점포를 활용하여 지역 아이들이 책도 읽고, 수시로 쉼터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시장 내 다양한 공방이 있어 소쿠리, 멍석, 찻상 등 다양한 생활공예품을 직접 만져보고 짚신 꼬기, 조각보 만들기와 같은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협동조합 아리송 (담아가게)

14.2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남봉로 134

'아름다운 마을의 노래' 라는 의미의 아리송은 인간존엄과 성생명 윤리의식을 기반으로 진로교육을 진행하는 협동조합이다. 완주교육청 방과후마을학교, 완주군 공동체 육성지원사업, 토요문화학교를 진행하고, 고산미소시장 진로카페 및 담아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환경교육을 하며 시작된 ‘담아가게’는 용기를 가져와 생필품을 담아갈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숍으로, 귀농귀촌인이 많은 지역에서 안쓰는 물건, 필요 없는 물건, 필요한 물건을 서로 공유하며 재사용역할을 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연산황산벌오토캠핑장

연산황산벌오토캠핑장

14.3 Km    5     2023-08-21

연산 황산벌 오토캠핑장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논산시청을 기점으로 논산대로와 신신양로를 번갈아 달려 25분 안팎이면 도착한다.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멋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데, 캠핑장 입구에 들어서면 한눈에 봐도 사이트 구획이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외부 모습뿐만 아니라 여러 부대시설을 둘러봐도 청결한데, 일반야영장인 이곳은 데크 30면을 마련했다. 사이트 크기는 가로 7m 세로 8m, 가로 4.5m 세로 7.3m로 두 종류가 있고, 개인 트레일러나 카라반 출입도 허용하지만, 일반야영장 사용료보다 약간의 비용을 더 지불하면 된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캠핑장 주변에는 탑정호, 개태사 등 논산의 유명 관광지가 있고, 탑정호 주변에는 민물매운탕 등을 전문으로 요리하는 식당도 많이 있다.

추수경장군묘역

14.3 Km    17551     2024-05-03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추동안길 14-7

추수경 장군은 명나라 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청하, 호는 세심당이다. 명나라 귀주성 성덕산하 오현군 칠성동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재예가 뛰어나고 문무를 겸비해 16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명나라의 무강자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의 신종에게 청원하여 이여송의 원군을 출병케 하였고, 자신도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총병아장으로 다섯 아들과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함께 참전하였다. 1593년 2월 곽산 대첩을 시작으로 평양성 탈환, 개성ㆍ한양 수복 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남원 전투에 참전하였고, 전주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전주사고를 끝까지 지켰다. 명나라 군사들의 환국 시 조상의 나라에 남기로 하고 전투에 참여한 5명의 아들과 함께 완주군 봉동읍 추동에 남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추동이라는 마을 이름도 추수경 장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죽은 뒤에 충장공의 시호를 내리고 호성공신·완산부원군으로 봉하였다. 무덤 앞에 있는 비는 1973년에 새로 세운 것인데, 원래의 비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제각으로 썼던 [봉양제]라는 건물은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터에 주춧돌과 정문만이 남아 있다. 훼손된 묘역은 2004년 11월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완주군에서 신도비와 사당 봉양사를 세웠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4 Km    2231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은 마한 시대 도읍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 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 장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