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사(창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음사(창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관음사(창녕)

14.0 Km    17781     2023-12-05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영산도천로 11-14

관음사는 창녕군의 자그마한 동산인 좌복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일제강점기에 창건됐으며 6.25전쟁 때 전소한 것을 1928년 새로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사찰안에는 설법보전, 천불전, 산령각 그리고 공양간 등의 건물이 있다. 보존 문화재로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천삼층석탑과 미륵불비상, 통일신라시대 말기와 고려 초기 즈음의 것으로 추정되는 관음사 석등, 조선 고종 때 제작된 아미타불회도가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사찰안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정원처럼 아기자기하여 특색있다.

홍의장군 곽망우당 묘소

14.0 Km    3945     2023-10-24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해 있는 홍의장군곽망우당묘소는 홍의장군 곽재우 선생의 증조부로부터 5대에 걸친 선영이다. 충익공이 임종에 즈음하여 임진왜란 당시 왕릉이 무너지고 종묘가 불탔으니 신하된 자가 묘의 봉분을 쌓을 수 없으니 예장을 하지 말라고 유언하여 곽재우의 묘는 1617년 봉분없이 평장하였다. 그로부터 114년이 지난 영조 7년, 1731년에 한음의 후예 현풍현감 이우인이 충익공의 묘소를 참배한 후 실묘가 염려되어 사림들을 설득, 충익공의 유지를 받들어 봉분을 낮게 쌓았다. 이와 같은 보고를 접한 경상도 관찰사 조현명은 대제학 이덕수로부터 비문을, 좌의정 조문명으로부터는 글씨를 받아 충익공의 유언을 존중하여 1732년 소박한 장식의 묘비를 세웠다. 충익공의 묘는 정부인 상산김씨와 합장묘이며, 유가면 가태리에 불천위 사우와 예연서원이 있다. 곽재우 장군(1552~1617)은 경남 의령군 유곡면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계수(季綬)이고,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관군(官軍)이 대패하자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대신하여 싸웠다. 그는 스스로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 하여 붉은 비단으로 군복을 지어 입고 백마에 높이 앉아, 아군과 적군에게 위엄을 보이고 위장전술로 적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장군이 이끄는 의병은 왜군의 진로를 차단하여 그들이 계획한 호남진출을 막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장군은 그 후 성주목사, 경상좌도 방어사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더 이상 다른 벼슬은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광해군 9년(1617년) 4월 10일에 창녕군 길곡면 창암리에서 66세로 생애를 마쳤고, 숙종 35년(1709년)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중되었다.

예연서원

예연서원

14.1 Km    25099     2023-07-26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구례길 123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곽재우(郭再祐)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충현사’로 처음 세웠고 1674년(현종 15)에 규모를 확장하여 서원의 모습을 갖추었다. 1677년(숙종 3)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예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폐쇄된 것을 1872년(고종 9)에 경의당(景義堂)을 건립하였고, 다시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77년 강당·삼문(三門)을 복원하고 1984년 사당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 곽재우와 곽준의 신도비(神道碑)와 비각(碑閣)을 다시 세웠는데, 이 비(碑)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이 흐른다고 하여 ‘땀나는 신도비’라고도 한다. 현재는 곽재우의 재종숙으로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곽준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있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경내에는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비석이 있어 흥미롭다.

달창지벚꽃길

달창지벚꽃길

14.5 Km    2     2023-10-06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로34길 27(한정리 일원)

달창지벚꽃길은 달성군 유가면 한정리마을에서 달창저수지까지 왕복 약 5km를 일컫는다. 벚꽃길은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간직한 한정리 마을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달창저수지와 어우러지며 장관을 연출한다. 달창지벚꽃길은 비슬산자연휴양림과 함께 달성군의 대표 관광 명소로 알려져 해를 거듭할수록 상춘객들로 북적인다.

낙동강 위더스 럭셔리글램핑

낙동강 위더스 럭셔리글램핑

14.7 Km    3     2022-11-16

경상남도 창녕군 박진로 627

위더스글램핑(낙동강 위더스 럭셔리글램핑)은 경남 창녕군 남지읍 반포리에 자리 잡았다. 창녕군청을 기점으로 20km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우포1대로와 수개시남길을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분 안팎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글램핑장으로 탈바꿈한 덕분에 감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캠핑장에는 스윗존, 해피존, 낭만존의 3개 구역에 걸쳐 글램핑 객실 34개 동이 마련돼 있다. 내부에는 침대, TV, 테이블, 개수대, 취사도구, 조리도구, 화장실, 샤워실 등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설이 완비돼 있다. 국내산 돼지고기, 김치, 소금, 참기름, 쌈장, 고추, 마늘, 상추, 깻잎, 버섯 등 바비큐 무한 제공 세트로 제공된다. 부대시설로는 수영장, 유아 풀장, 매점 등이 있다. 주변에는 창원마법의정원이 있다.

표충비

표충비

14.7 Km    23606     2023-12-28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 사명대사의 영검이 담겨있는 비, 표충비 *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 경내에 위치한 비각으로 사명당 송운대사를 일명 사명대사비라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이끌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시킨 유정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즉 표충사의 동쪽인 이곳에 1742년(영조 18) 대사의 5대 법손 남붕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건립하였다. 비신과 화강암의 비개를 갖추었고, 경주석재인 빗돌은 까만 대리석이며 좌대석과 이수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뒷면에는 서산대사 휴정(休靜)과 기허(驥虛)대사의 행장(行狀)이 새겨져 있고 측면에는 표충사(表忠祠)에 대한 내력을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영중추부사 이의현이, 글씨는 홍문관 부제학 김진상이 쓰고 판중추부사 유척기가 전서하였다.

* 땀 흘리는 비로 유명한 표충비 *

표충비가 유명해진 이유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비신에서 땀이 흘렀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마치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이곳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한다. 그래서 ‘땀흘리는 표충비’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밀양 얼음골과 만어산어산불영경석과 함께 밀양의 3대 신비로 일컬어진다.

홍제사(밀양)

14.8 Km    20927     2024-05-21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홍제사는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사당 수호사찰이다. 그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나 이곳 무안에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이기도 하며 사명대사가 창건한 백하암이 있던 곳으로, 홍제사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뒤 백하암에 세웠던 표충사의 후신이다. 백화암은 병자호란으로 그 내부에 있던 사당이 퇴락하자 1710년(숙종 36) 밀양부사 김창석이 사명대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을 짓고 사당을 정비하였다. 이후 표충비각의 창건주로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 남붕선사가 나라로부터 표충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현재의 터에 표충비각을 세우고 백화암에 있던 사당을 홍제사터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사당 수호사찰로 명맥을 유지다가 1838년(헌종 4)에 표충서원이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천유대사의 주도로 재약산 아래 영정사로 옮겨지면서, 비각을 독자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자그마한 원당과 삼비문을 형성하여 현재의 가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비각의 관리는 표충사 승려가 번갈아 파견되어 담당하다가 일제 때에는 대처승이 허물어진 원당과 요사를 헐고 현대식 법당과 요사를 지어 포교당으로 삼고 비각을 보존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구연운 화상이 비각의 관리를 맡아 비각과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그 뒤 거의 폐허가 되어 표충비만 남게 되었다. 1977년에는 창건주 한월 동조선사가 홍제사라는 이름으로 재창건하여 국가의 지원으로 표충비각을 중수하면서 현재의 가람을 이룩하였다. 1978년에 표충비를 보호하는 보호각을 건립하고 그 주위로 담장, 삼비문과 비각을 수호하는 인법당 등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연경장엽 선사가 경충당을 건립하였고, 1981년에는 현재 요사로 쓰고 있는 인법당을 축대 아래로 내려 현재의 설법보전을 신축하였다. 1981년부터 수년간 홍제사 2대 중창주인 정상 스님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도움으로, 주법당인 설법보전과 사적비, 범종각, 경충당, 요사 등 현재 홍제사의 가람 기틀을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는 표충비각의 수호사찰로 밀양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명대사 성역화작업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의 중대사나 위기 때마다 표충비에서 땀이 흘러 [땀 흘리는 비]를 지키는 사찰로 전국에 알려져 있기도 하다.

동부식육식당

동부식육식당

14.8 Km    20270     2023-02-16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중앙길 5
055-352-0023

밀양 3대 국밥집 중에 하나인 이곳은 밀양 돼지국밥의 원조집이라 불리는 곳으로 맑고 깨끗한 국물에 잡내 없이 담백한 그 맛이 참으로 시원하다. 거기다 푸짐하게 담긴 쫄깃쫄깃한 고기의 육질 또한 이 집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데, 특별한 기교 없이 새우젓 하나로 간을 맞춰 먹는 이곳의 국밥. 은근히 입맛을 당기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신남서원

14.8 Km    1757     2023-10-05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판정로 125-13

무안면 정곡리에 있는 신남서원은 고려 말기 대마도정벌과,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운 정국군 박위와 조선 초기 문신인 소총재 박기 부자를 향사하는 서원이다. 밀성 박씨 정국군파 종중 소유로 종중에서 관리한다. 신남서원은 순조 22년(1822)에 후손인 박성기의 주청으로 밀양 사림의 공론을 모아 창건 하였다. 서원내 사당을 상모사, 강당을 경보당이라 하며, 당시 봉안문과 상향축문은 응교 강세백이 지었다. 이 서원의 주향으로 모셔져 있는 박위장군은 고려 우왕 때 김해부사로서 여러 번 왜구를 격파했고, 우왕 14년에는 경상도도순문사의 직책으로 전선 100여 척을 인솔하여 이종무 이후 대대적으로 대마도를 쳐서 300여 척의 왜선을 불태우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1994년 우리 손으로 네 번째 건조된 잠수함에 이 박위장군의 이름을 빌어 [박위함]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고종 5년(1868)에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사당은 철거되었으나, 후손들은 서원 강당의 당호를 경보당으로 바꾸고 재실로 삼아 이곳에서 박위 장군을 주향, 박기를 배향으로 향사를 올렸다. 1981년에는 후손들의 발의와 고을 유림들의 호응으로 상모사를 이전대로 중건하였다. 서원의 배치는 사당인 상모사를 중심으로 전면에 신문을 설치하여 신역을 구분하였으며, 사당 밖에는 강당인 경보당이 있다. 경보당은 견치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지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 홑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평면은 가운데 삼 칸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형식이며, 대청 앞은 개방하고, 온돌 앞에는 두 짝의 띠살창이 달려 있다.

무안장 (1, 6일)

무안장 (1, 6일)

14.8 Km    13265     2023-11-06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사명로 510-7
055-359-5052

무안장은 밀양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임산물을 중점으로 판매하는 전통재래시장이다. 2012년 현대화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고, 전체 점포 수는 94개이며 그중 노점은 42개, 영업 점포는 52개이다. 매달 1일, 6일로 끝나는 날에 장날이 선다. 오일장에는 장터 곳곳에 노점상이 개설되고, 지역에서 재배하고 수확한 과일, 채소, 곡식 등 다양한 농산물을 지역 주민이 직접 판매하고 있어 품질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밀양시 무안면은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은 지역으로 사명대사 유적지와 생가, 표충비각, 홍제가 등이 있는 전통역사문화의 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