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Km 2024-10-16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7길 13-5 (만촌동)
053-666-4930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두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휘하 장수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두사충은 지세를 살펴 진지를 펴기 적합한 장소를 잡는 수륙지획주사라는 직책을 맡았다. 따라서 두사충은 이여송의 일급 참모로서 조선군과도 전략 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하였다.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두사충은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아들 두산·두일건을 데리고 매부인 진린도독과 함께 다시 출진하였다. 전란이 끝난 뒤 두사충은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귀화하였고, 조정에서는 두사충에게 대구 시내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 일대의 땅을 하사하였다. 이후 두사충이 받은 땅에 경상감영이 옮겨 오게 되자 두사충은 자신의 땅을 내어놓고 계산동으로 옮겨 세거하였다. 고국에 두고 온 부인과 형제들을 그리워하던 두사충은 최정산(현재의 대덕산) 밑으로 집을 옮겨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붙이고 단을 쌓아 매월 초하루가 되면 명나라 황제가 있는 자금성 쪽을 향하여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으로 지어졌다. 또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들이고, 앞쪽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고 있다. 모명재는 20세기 초 대구 지역의 재실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준다. 모명재는 1912년 경산객사가 헐리자 그의 후손들이 그 재목을 옮겨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으로, 건물이 너무 낡아 1966년 중수하였다. 대구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 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재정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모명재 이웃에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을 열고 다례한복체험이나 활쏘기, 동의보감 음식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으니 전통관에서의 체험도 같이 해 볼 수 있다.
2.6Km 2024-05-21
대구광역시 동구 아양로9길 6
대구는 양념통닭과 간장치킨의 발상지고 치맥을 축제로 승화시킨 치맥페스티벌의 중심지이며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성장해온 전국유일의 닭똥집골목인 대구평화시장닭똥집골목은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1972년 삼아통닭은 넉넉잖은 형편의 인력시장 노동자들에게 장사를 하다가 남은 닭똥집을 튀겨 막걸리 안주로 내어 주었는데 반응이 좋아 정식 메뉴가 되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음식이 닭똥집 골목 역사의 첫 출발이었다. 삼아통닭 닭똥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주변의 음식점들이 모두 닭똥집을 파는 가게로 변하게 되어 닭똥집 골목이 형성 되었고 이를 원조골목이라고 부른다. 90년대 들어오면서 당시 근처에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대학생들은 재래시장의 선술집 분위기와 저렴한 가격, 푸짐한 인심을 즐기며 이곳을 찾아 청춘의 추억을 쌓았고 골목의 인기가 높아지자 주변 골목도 닭똥집 가게들로 채워졌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간장똥집, 마늘똥집 등 새로운 감각의 닭똥집 전문점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동성로만 찾았던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해 지게 되었다. 젊은층이 많이 찾으면서 그들의 입맛에 오징어똥집, 새우똥집, 문어똥집 등 다양한 퓨젼요리가 판매되었다. 이렇게 이어져 온 닭똥집골목은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의 장소, 젊은이들에게는 가성비가 좋고 맛있는 음식이 즐비한 젊음의 거리, 관광객들에게는 닭똥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경험하게되는 곳으로 꼭 한번은 방문해야 할 대구를 대표하는 먹거리 골목이다. 동대구역이 인접하여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며, 주변으로 금호강변에 동촌유원지를 비롯해 기상대 기념공원 등이 있어 휴식공간도 같이 즐길 수 있으니 시장에 들러 특별한 오감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