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Km 2025-01-03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492길 27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기리는 다양한 카츠 정식과 면류 등을 판매하는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이다. 카츠 정식 중에서도 안심 카츠 정식은 마블링의 고소한 풍미와 안심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을 살렸다. 전체적으로 촉촉한 느낌이지만 안심을 둘러싼 튀김옷은 바삭함을 유지하고 있어 겉바속촉의 조화를 이룬다. 돈카츠는 소금 또는 고추냉이에 찍어 먹을 수 있고, 정식 기본 찬으로 장아찌, 마늘종, 장국, 푸딩 등이 함께 나온다. 부드러운 고기와 국물의 감칠맛이 일품인 네기니쿠우동도 돈카츠와 같이 먹기 좋다.인근에 범어공원과 야시골 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식후에 산책 삼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13.6Km 2025-03-25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2 (남산동)
1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대구 남산동 가톨릭타운은 대구 천주교의 발상지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캠퍼스, 천주교대구대교구청, 성직자묘역, 성모당(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 계산동성당(사적),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등이 모여 있다. 울창한 숲 사이사이로 보이는 프랑스풍의 붉은 벽돌 건축물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가톨릭타운엔 순례자를 비롯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1918년 프랑스 루르드 성모동굴을 본뜬 성모당 앞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13.6Km 2025-03-19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112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서,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과 학생을 교육하는 강학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였다. 1400년에 불타자 곧 재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어 1599년(선조 32) 현재의 달성공원 부근에 재건하였다. 1605년 교동으로 이건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932년 현 위치로 이건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문묘·삼문 등이 있으며, 향교 내에는 대구성(大邱城)의 축성 및 유래를 기록한 축성비(築城碑)와 수성비(修城碑), 경상도관찰사·판관·군수 등을 지냈던 사람들의 불망비(不忘碑)·송덕비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3.6Km 2024-12-22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로73길 37 (평리동)
평리도서관은 2023년에 새롭게 문을 열어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도서관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어린이자료실, 종합자료실, 문화홀, 힐링라운지, 공동육아나눔터, 북다이브룸, 디지털갤러리 등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13.6Km 2024-07-23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로 144
반야월종합시장은 매달 1일과 6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이곳에서는 먹을거리는 물론 의류, 잡화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반야월종합시장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신기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이면 닿는다. 인근 관광지로는 율화광장, 안심근린공원, 반계근린공원, 고산서당 등이 있다.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청
13.6Km 2024-10-16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7길 13-5 (만촌동)
053-666-4930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두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휘하 장수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두사충은 지세를 살펴 진지를 펴기 적합한 장소를 잡는 수륙지획주사라는 직책을 맡았다. 따라서 두사충은 이여송의 일급 참모로서 조선군과도 전략 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하였다.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두사충은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아들 두산·두일건을 데리고 매부인 진린도독과 함께 다시 출진하였다. 전란이 끝난 뒤 두사충은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귀화하였고, 조정에서는 두사충에게 대구 시내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 일대의 땅을 하사하였다. 이후 두사충이 받은 땅에 경상감영이 옮겨 오게 되자 두사충은 자신의 땅을 내어놓고 계산동으로 옮겨 세거하였다. 고국에 두고 온 부인과 형제들을 그리워하던 두사충은 최정산(현재의 대덕산) 밑으로 집을 옮겨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붙이고 단을 쌓아 매월 초하루가 되면 명나라 황제가 있는 자금성 쪽을 향하여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으로 지어졌다. 또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들이고, 앞쪽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고 있다. 모명재는 20세기 초 대구 지역의 재실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준다. 모명재는 1912년 경산객사가 헐리자 그의 후손들이 그 재목을 옮겨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으로, 건물이 너무 낡아 1966년 중수하였다. 대구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 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재정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모명재 이웃에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을 열고 다례한복체험이나 활쏘기, 동의보감 음식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으니 전통관에서의 체험도 같이 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