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m 1 2022-11-07
경상북도 청송군 초막본길 40
농가맛집 두연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에 있다. KBS 1TV 시사 교양 프로그램 6시 내고향에 소개된 바 있다. 토속적인 멋을 풍기는 외관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오색사과솥밥, 두부김치찜, 사과코다리찜, 두부전골이 제공되는 점심특선이다. 이 밖에 각종 정식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청송IC에서 가깝고, 주변에 주왕산국립공원과 달기폭포가 있다.
511.2015532038738m 19526 2022-03-14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1056-1
청송읍 소재지 용전천상에 솟아오른 듯한 높이 20여미터의 단애로 절벽아래의 물이 깊고 맑아 보기만 하여도 서늘하다. 청송군 청송읍 청송읍을 관통하는 용전천(龍纏川)에 병풍처럼 우뚝선 기암 절벽이 있으니 갖가지 수목의 아름다운 모습이 강물에 비치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바, 일명 용비암이라고도 한다. * 현비암에 얽힌 전설 * 옛날 한 부지런한 아낙네가 이른 새벽 아침밥을 짓기 전에 빨래를 마치려고 냇가에 이르렀을 때 여명의 강 안개 속으로 용 한마리가 승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놀란 아낙이 "에그머니 용이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수천년 동안 승천의 꿈을 키워 온 용은 그만 승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위 밑엔 깊은 물이 흐르는데 승천하지 못한 용이 원통해 하며 흘린 눈물이라고 한다. 용이 떨어진 후 이 마을에 흉년이 겹쳐, 농사가 잘 안되어 용의 진노를 풀기 위하여 이 바위 위에다 성황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도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현비암 위에는 성황당이 있다. 후에 이 바위를 현비암(賢妃岩)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 바위 뒷산 보광산에 가면 청송 심씨의 시조묘가 있는데 세종대왕 비인 소헌왕후 심씨 같은 어진 왕비를 낳았다해서 불리워지게 되었다. 현비암은 시조 문림랑공의 묘소가 있는 보광산소의 백호 능선 맨 끝에 자리잡고 있다. 냇가에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현비암은 마치 병풍을 둘러쳐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연꽃이 물 위에 솟아있는 듯하여 그 경관은 참으로 기이하고 아름답다. 전설에 의하면 당초에는 바위 형태가 아주 험악하였는데 문림랑공의 장례 전날밤에 갑자기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져서 험악했던 암석이 부서지고 옥순을 깎은 듯이 아름답게 다듬어졌다는 것이다. 1418년 세종대왕이 즉위한 후 소헌왕후의 친정 고향이라 하여 청송이 현에서 군으로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조정으로부터 많은 특전이 베풀어지자 고을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보광산소가 영험있는 명당이라 하여 보광산에서 춘추로 명산대천제를 올렸으며, 이 바위를 현비암(賢妃岩)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1.6 Km 18870 2023-03-14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현충로 51-352
보광사는 스스로 모습을 감추고 속세를 떠나 숨어 있다. 지붕이 허물어져 비닐로 덮인 요사와 쇠락한 만세루, 여전히 장중함이 묻어있는 대웅전의 후원은 오랜 세월의 흔적임을 무언으로 말해준다. 주인도 객도 오고가는 길손 하나 보이지 않는 산사에는 낡은 쇠소리를 내는 풍경만이 이리저리 바람에 쓸리고, 마당을 홀로 지키는 키 작은 석탑은 한낮 햇살과 노닐고 있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자료가 없어 확실하지 않은데 소헌왕후 심씨가 절 근처에 있는 청송 심씨 시조의 묘를 제향하기 위해 추모재와 만세루를 짓고 원당 사찰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청송 심씨 후예들이 보광사를 중수하는 일이 많았고 관련된 사적도 전해지고 있다. 현재 보광사 만세루에 경상도관찰사, 이조판서,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했던 심성희 등 청송 심씨의 후손들이 기록한 현판 3매가 걸려있다.
2.1 Km 18088 2022-12-29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청송군민으로서 6.25 전쟁 등 자유 민주주의와 국가수호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거룩한 희생과 위국헌신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역사체험의 산교육장과 추모제전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2년 1월 8일에 건립되었다.
* 시설규모 - 부지 4,481㎡, 높이 11.7m, 폭 2.4m
2.3 Km 18069 2022-06-20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망미정은 100여 년 전인 1899년 청송부사 장승원(張承遠)이 건립한 정면3칸 측면3칸 팔작(八作) 집으로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는 뜻에서 명명됐으며 현비암과 조화를 이뤄 형언할 수 없는 절경과, 절벽 밑에는 수심 3m의 소(沼)가 사계절 마르지 않아 보는 이들이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우송당은 300여년전 윤두석선생의 유상지소(遊賞之所)이던 곳을 숙종14년(1688년) 무진년에 그의 손자 윤상영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당으로 전해지고 있다.
2.4 Km 69396 2023-09-21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054-873-3686
경상북도 청송은 적은 강수량과 풍부한 일조량, 깨끗한 자연환경 등 사과를 재배하기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자연이 빚어낸 명품’이라 불리는 청송사과가 무르익는 가을, 풍성한 수확의 기쁨과 청송사과의 맛과 영양을 함께 나누는 청송사과축제가 열린다. 축제에서는 10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청송사과를 테마로 하는 유익하고 즐거운 체험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하늘에서 풍선을 떨어뜨려 황금사과를 찾는 ‘만유인력-황금사과를 찾아라’, 만보기가 달린 방망이로 지퍼백 속의 사과를 두드려 잼을 만드는 ‘꿀잼-사과 난타’ 등 재치 있는 체험도 준비되어 있다. 이밖에도 청송사과 퍼레이드, 청송꽃줄엮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2.4 Km 2 2023-05-08
경상북도 청송군 금월로 269 소헌공원
소헌공원은 찬경루, 운봉관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각종 음악회, 행사가 펼쳐지는 곳이다. 찬경루는 청송지역 객사의 누각이며, 운봉관은 중앙에서 파견된 외국의 사신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한 객사이다. 공원 명칭은 2010년 군민과 출향인을 대상으로 공모 절차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과정 및 군정조정위원회를 거쳐, '소헌공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공원 명칭의 유래는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이다. (출처: 청송군청 문화관광과)
2.4 Km 20364 2023-08-23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이 건물은 조선 세종(世宗) 10년(1428) 군수 하담(河擔)이 찬경루(讚慶樓)와 함께 건축한 청송군의 객사(客舍)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중수기문에 의하면 선조 때(1600년 경) 한차례 중건한 바 있으며 숙종(肅宗) 43년(1717) 부사 성환(成煥)이 다시 중수하였고 순조(純祖) 12년(1812) 부사 강휘옥(姜彙鈺) 및 고종(高宗) 8년(1871) 부사 윤현기(尹顯技)가 각각 중수하였다. 이 건물은 찬경루 뒤쪽에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객사는 원래 중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양익사가 배치되어 있는 건물이었으나 국권침탈 후 1918년경 중당과 서익사가 없어지고 현재 동익사에 현판을 달아 보존하고 있다. 현 객사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집으로 건축시기는 양식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으나 일부분은 조선 후기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2.4 Km 21080 2022-11-11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세종 10년(1428년)에 군수 하담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소헌왕후의 8왕자가 어머니를 위해 각 2칸씩 건축하였다고 하며 화재로 인하여 1688년에 중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으로 보물이다. 맞은편 보광산에 있는 심홍부(청송심씨 시조) 묘소의 재각이며 장마철 용전천의 범람으로 묘소로 갈 수 없을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찬경루란 누각명은 군수 하담의 청을 받은 관찰사 홍여방이 순시때 지은 것으로 누각에 올라 심씨시조묘를 보니 소헌왕후를 배출한 경사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2.6 Km 19137 2022-07-22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67-11
청송포교당은 팔공산 은해사의 청송지역 포교당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청송포교당은 1936년에 청송읍내의 신도들이 마음을 모아 세운 사찰이다. 따라서 초창기 창건이후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역사는 전하는 게 없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을 딛고 고령지역민의 포교를 위해 군법회며 불자들을 모아 불심을 펼치는 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원래 경허선사가 주석하였다고 하며 그 뒤 1936년 청송읍내의 신도들이 합심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이후 이렇다할 사적은 전하는 게 없으며, 청송읍내의 포교당으로 지역 주민과 가까이 호흡하며 불법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