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Km 2024-06-18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정상동
삼척시의 동쪽인 정상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섬이어서 죽관도라 했고, 지금은 육향대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동해안의 9개군과 울릉도, 독도까지 총괄했던 삼척포진성이 있었으며, 조선시대 학자이며 정치가인 허목의 치적을 기린 평수토찬비가 있었다. 현재는 산 정상에 척주동해비(일명 퇴조비-동해안의 조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세운 비석)와 평수토찬비 (강원도 유형문화재/1971년 12월 16일 지정-임금의 은총과 수령과 함께 자신의 치적을 기린 글)과 육향정(대동청년단원중심으로 지방유지들이 조국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준공한 정자)이 있다. 이 비들은 조선 현종 2년(1661)에 삼척부사 허목이 세운 것이다 이곳은 해마다 해상 안전과 동해바다를 지키던 삼척포진영 영장들의 넋을 기리고, 어민들의 풍어를 기원하는 <삼척포진영 영장고혼제 및 육향 문화축제>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육향산 주변관광지로 새천년해안유원지, 엑스포타운, 해신당공원, 민물고기전시관 등이 있다.
19.3Km 2024-08-27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새천년도로 88
033-574-3543
20여 년 전통의 곰치국 전문 음식점 바다횟집은 강원도 삼척시 정하동 삼척항 인근에 있는 곰치국 전문 음식점이다. 바다횟집은 1993년 겨울, 가정집에서만 해먹던 김치 곰치 해장국을 시험 삼아 차림표에 올렸다. 거저 줘도 시큰둥해하던 곰치가 이젠 없어서 못 파는 '금치'가 됐다. 곰치국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생선회와 식사 메뉴가 제공된다.
19.3Km 2023-07-02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새천년도로 84 만남의식당
곰치는 생김새는 투박하고 못생겼지만 살은 부드럽고, 국물은 시원하게 우러난다. 큼직한 곰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나온 곰치국은 뜨끈하게 속을 풀어줘 애주가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만남의식당 벽과 천정에는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와 사인으로 가득하다. 식당이 크지는 않지만 빠른 회전으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맛있는 곰치국을 맛볼 수 있다. 만약 제철 맞은 곰치가 없더라도 실한 대구해장국과 생태탕이 있어 그 아쉬움을 달래준다.
19.3Km 2023-09-15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새천년도로 77
033-574-8585
평남 횟집은 삼척항 바로 앞에 위치해있으며 단체석을 완비하였다. 기본 반찬으로 게장, 장어 등 여러 가지 해산물이 푸짐하게 제공된다. 신선하고 품질 좋은 자연산 활어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신선한 자연산 회와 모둠 회가 단연코 인기 메뉴이다.
19.3Km 2024-06-18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정하동 41-282
이사부광장은 삼척항 활어센터 옆에 있다. 항구 옆 해변을 길게 감싸고 있는 정라진 방파제와 연결되어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테마공원이다. 공원에는 각종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잔디마당을 중간에 두고 야외공연무대와 게이트볼장이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광장의 핵심시설은 스카이 데크로 데크를 통해 해변 방파제와 연결되어 있다. 데크에서는 삼척항의 모습과 동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곳이 일출 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광장에서 300미터 지점에는 이사부사자바위가 있다.
19.4Km 2023-07-02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새천년도로 97 해원 펠리스횟집
033-573-8112
삼척시 정하동에 위치하였으며 인근해역에서 갓 잡아올린 신선한 횟감을 제공하며 다양한 주변 관광지를 관광할 수 있다.
19.4Km 2023-07-27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새천년도로 65-1
033-573-3810
삼척시 정하동 새천년도로쪽에 위치하였으며 인근 연안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재료의 횟감을 사용하고 있다. 오징어물회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연계 관광지로 나릿골 감성마을, 항구전망대 등이 있다.
19.4Km 2024-06-07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미수2길 17
조선 현종 2년(1661) 때 삼척 부사를 지낸 허목(1595∼1682) 선생과 관련이 있는 2기의 비이다. 허목 선생은 성리학을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와 경서연구에 전념하였고 특히 예학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다. 척주동해비는 정상리 육향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정라진 앞 만리도에 세워 놓았던 것을 비가 파손되자 숙종 36년(1710)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 지방은 파도가 심하여 바닷물이 마을까지 올라오고 홍수가 지면 주민의 피해가 극심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담긴 글을 손수 짓고 독특한 필체로 비문을 새겨 이 비를 세웠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가 잠잠해지고 주민들의 피해도 없어졌다고 한다. 문장이 신비하면서 물리치는 능력도 지녔다고 하여 퇴조비라고도 불리우며, 전서체(篆書體)에서 동방의 제1인자로 불리는 허목 선생의 기묘한 서체로 인해 더욱 유명하다. 평수토찬비는 척주동해비와 조금 떨어져 있으며 동해비와 같은 의미로 세운 것이다. 중국 형산의 우제가 쓴 전자비(篆字碑)중 일부를 허목이 목판에 새겨 보관하던 것을, 고종 광무 8년(1904) 왕의 명에 의해 칙사 강홍대, 삼척군수 정운석 등이 돌에 그대로 새겨 넣은 것이다. 전면에는 해서체로 대한평수토찬비라 새기고 측면에는 고종 41년(1904) 비석을 옮겨 세운다는 기록이 있으며 뒤에는 전서로 된 48자의 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