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목사고을시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나주목사고을시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나주목사고을시장

15.1Km    2024-06-12

전라남도 나주시 청동길 14
061-334-8249

나주 지역은 영산강을 품고 있는 평야 지대로 농산물은 물론이고, 수산물이 풍부해 시장이 형성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영산강의 풍부한 수량을 관개용수로 삼아 영산강 유역의 땅을 기름지게 했고,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을 바탕으로 영산강의 물길을 이용해 활발하게 상업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나주는 인접한 무안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장이 개설되었다. 풍부한 물산과 지리적 이점으로 18세기에 15개의 시장이 있었지만 19세기에는 잦은 농민운동과 자연재해로 인해 7개로 줄어들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부상한 시장은 영산강의 수로 교통과 호남선의 이점을 살린 영산포장이었다. 이후 영산강 상류의 댐 건설로 수로 교통의 이점을 잃었고,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나주읍이 상권의 중심지가 되면서 장세가 약화되었다. 나주 시내에는 나주 읍내장의 명맥을 이은 성북시장과 옛 장터에 개설된 상설시장 금계매일시장이 있었는데, 도시의 복원 계획에 따라 두 시장이 통합되어 2012년에 나주목사고을시장으로 변모했다. 나주목사고을시장은 2013년에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었고 토요문화장터, 토요야시장 등을 통해 성공적인 전통시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전통식당

15.1Km    2024-10-21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고읍현길 38-4

전통식당의 한정식은 장아찌, 나물, 굴비, 삼합 등 상에 올라오는 반찬이 30여 가지 가까이 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 하나 자리만 차지하는 반찬들이 아니라 보리굴비, 떡갈비, 삼합, 각종 나물과 장조림까지 맛스러운 찬거리들이 다양하게 올라온다. 또한 코스형식이 아닌 모든 음식을 한 상에 모두 올려서 한꺼번에 먹는 한상차림 형식으로 차려져서 '상다리가 부러지겠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태평사

15.1Km    2024-10-15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성산길 387-83

금성산의 자락에 위치한 태평사는 1956년 금명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 2동, 종각으로만 이루어진 단출한 규모이다. 요사채는 서민의 살림집 유형이며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석가모니불 및 보살입상 2구를 봉안하고 있다. 주지승에 의하면 지금의 자리에 고려 시대에 큰 사찰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가 6·25 동란이 끝난 후 나주 교도소에서 일하는 불자의 꿈에 지장보살, 관음보살이 연속으로 현몽되어, 지금의 태평사의 위치에 와서 파보니 연좌와 탑파의 상륜부가 나오고 지장보살이 나왔다 한다. 옛날의 절터였다는 증거가 되는 6각주초가 대웅전 앞 화단에 있으며 뒷 암벽에 불상이 양각되어 있다. 봄이 되면 사찰 입구는 철쭉꽃과 겹벚꽃 길로 유명하다. 태평사 입구에서 차량 이동 약 7분, 3.5km 거리에 신숙주 생가터가 있고 멀지 않은 거리에 인접하여 마을 쉼터이자 강학 공간 역할을 이어오고 있는 쌍계정이 있다.

나주장(성북장) (4, 9일)

15.2Km    2024-04-24

전라남도 나주시 성북동
061-330-8465

광주에서 시외버스로 나주공용터미널에 내리면 바로 도로변에서부터 5일 시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바로 앞에는 원예협동조합 공판장이 있어 과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매월 4, 9, 14, 19, 24, 29일이면 5일 시장이 형성되어 장옥은 41동 261간의 점 포가 있으며 점포사용인원은 112명 정도이며 주로 어물, 식료품, 잡화, 채소,의 류가 소매되고 있으며 개설일자는 1966년도에 5일시장이 개장되었다.

한국가사문학관

15.2Km    2024-05-28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조선 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 관동별곡 · 사미인곡· 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 · 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 · 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및 작자 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담양군에서는 담양의 가사문학 관련 문화유산의 전승, 보전과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해 1995년부터 가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문학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은 호남 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시가문화유적지

시가문화유적지

15.2Km    2023-10-24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 가사문학의 산실을 따라 떠나는 여행, 시가문화유적지 * 담양에는 가사 문학의 산실인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 소쇄원 등 가사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 앙정은 예부터 담양의 풍요로움과 빼어난 경관으로 수많은 인재를 불러들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퇴계 이황, 송강 정철이 있다. 면앙정은 송순의 호이기도한데, 송순은 이 정자에서 “면앙정가”를 비롯한 수많은 가사를 지어 이 지방의 가사문학의 맥을 이끌었다. 면앙정은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 정송강유적, 식영정과 환벽당 * 광주 ~ 담양 국도에서 고서 삼거리를 지나 광주호 쪽으로 올라가면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이 있다. 이곳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탄생했던 곳으로, 원래는 서하당 김성원이 자기의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광주호를 사이에 두고 광주와 담양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식영정>은 정자문화의 산실로 이름이 높다. 식영정 건너편에 위치한 <환벽당>은 어린 시절 정철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한 사촌 김윤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아직도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 조선 시대 민간정원 소쇄원과 독수정까지 * 식영정에서 화순온천 쪽으로 약 1km 올라가면 왼쪽으로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소쇄원이 있다. 조선 중엽의 민간 정원 모습으로 남아있는 이곳은 전국에서 으뜸가는 전통 정원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소쇄원에 이르기 바로 전 왼쪽에는 지실마을이 있고, 지실마을 건너편 언덕에는 김덕령 장군의 일화가 남아있는 취가정이 있으며, 소쇄원에서 2km 정도 화순 쪽으로 올라가면 고려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지낸 서은 전신민이 조선 건국을 맞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낙향하여 절개를 지켰던 독수정이 있다. 독수정은 정자의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독수정 원림이 아름다운 곳이다.

지곡서원

지곡서원

15.2Km    2024-08-1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서당길 58-16

지곡서원은 화순군에 있는 창령 조씨 문중의 서원이다. 조선 태종 대 좌명공신이자 세종 대 우군 도총제를 지낸 조흡을 중심으로 정여립의 일파로 몰려 장살 당한 조대중, 홍문관 정자를 지낸 조수홍,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조수성, 조엽 등의 후손을 배향한 서원이다. 1785년에 고을 유림과 후손들의 발의로 화순현 역정에 건립하였는데, 당시 이름을 역정 서원이라 하였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명령으로 훼철되었고, 후손들은 화순읍 지실(다지리)에 별묘를 지어 춘추로 제향하였다. 그 후 1996년에 별묘가 있는 곳에 서원을 건립하여 예전의 모습으로 복설 하면서 이름을 지곡서원이라 하였다. 전면에 강당 1개, 후면에 사당이 놓인 전학 후묘형의 사우이다. 남동향으로 자리 잡은 외삼문에 들어서면 강당인 지곡 서원이 있다. 12㎝ 높이의 화강암 장대석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부일사가 있다. 강당과 마찬가지로 화강암 장대석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기단은 78㎝ 정도의 흙을 돋은 위에 자리하고 있다.

왕동저수지

왕동저수지

15.3Km    2024-09-12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서로 259

왕동저수지는 광주 용진산 서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용진산에서 뻗어나온 내왕산과 쓰래산 사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드넓은 저수지다. 이른 아침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가 장관인 곳이다. 왕동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용진산 석봉과 태봉에 올라 제를 지냈다고 한다. 1928년에 준공된 왕동저수지는 90만 1,000톤의 물을 저장하여 본량들 260만㎡의 농사를 책임졌다.용골에서 발원한 여미골 물이 더해지고 원당마을 앞에서 고개미골 물과 합쳐져서 왕동저수지로 들어간다. 저수지의 물은 다시 산보래산과 쓰래산 사이의 기구마골을 지나 본량 파출소, 황계를 거쳐 황룡강으로 흘러 나간다. 가물치, 잉어, 붕어, 민물새우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했던 저수지는 이제 블루길과 배스 등 외래어종의 서식지가 되어, 광산구청에서 외래종 퇴치를 위한 낚시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저수지 인근에 광산구 본량동 주민센터-왕동저수지-원당마을-용진산-사호동 마을까지 10㎞ 구간에 '고향 길'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정열사비

15.4Km    2024-06-03

전라남도 나주시 정렬사길 43

정열사는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 선생을 비롯한 나주의 충절 인물 다섯 분을 모신 사우이다. 의병장 김천일은 중종 32년 나주에서 태어나 전란 시 각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하면서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이 전투의 패배 직후 장수 여인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 순절한 사건은 유명하다. 정열사가 최초로 건립된 것은 선조 39년(1606)으로서 현 나주 고교 뒷편 월정봉 아래에 위치했다가 이듬해인 1607년 정열사로 사액되면서 사우를 현 나주 잠사 공장 부근으로 옮겼다. 이후에도 여러 번 자리를 옮기고 보수를 거치면서 1984년 현재의 대호동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의 규모로서 팔작지붕이고, 내삼문과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평대문이다. 정열사비는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장유 선생이 지었고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활동과 국내 전투 상황이 자세히 적혀있다. 이곳에서 차량 이동 7분, 약 3.8km 거리에 국립나주숲체원이 있다.

구백가든

구백가든

15.4Km    2024-04-03

전라남도 화순군 천태로 1020

구백 가든은 화순중흥골드레이크 cc와 인접한 곳에 있는 맛집으로, 골프장을 방문한 손님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소문난 맛집답게 주차장이 꽉 차 있는 경우가 있으니, 이 점 참고하고 방문해야 한다. 하모 샤부샤부와 키조개+소고기구이가 이 집의 대표 메뉴다. 하모 샤부샤부와 새조개 샤부샤부는 시가에 따라 가격이 변동된다. 소고기와 키조개 그리고 잘 익은 묵은지까지 이 세 가지 재료의 만남을 삼합이라 부르는데, 그 맛이 뛰어나 전국 각지에서도 찾아올 정도다. 단체 방문도 가능하여 회식 장소로도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