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Km 2024-10-16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
황학정은 원래 광무 2년(1898) 고종의 어명으로 경희궁(慶熙宮) 회상전(會祥殿) 북쪽 담장 가까이 세웠던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었다. 1922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 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이를 받아 사직공원 북쪽인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에 이건하였다. 황학정이 있는 사직동의 등과정 자리는 한말까지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등과정은 경복궁 서편 인왕산 기슭 옥동(玉洞)에 있던 등용정(登龍亭)·삼청동의 운용정(雲龍亭)·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太極亭)·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白虎亭)과 함께 인왕산 아래 서촌(西村) 오사정(五射亭)이라고 불렸다. 오사정을 비롯한 서울에 있던 이름 있는 활터는 일제 때에 전통 무술을 금지하면서 점점 사라졌다. 황학정의 활터는 전국에서 유명하였으며 광복 후에 계속 사용되었으나 6·25전쟁으로 건물도 파손되고 활쏘기도 중단되었다가 다시 중수되어 활터로 사용되고 있다. 과녁은 전방 약 145m 지점에 있으며, 1977년 일부 보수공사를 하였다. 황학정은 인왕산 동쪽 기슭 언덕 위에 동남향을 하고 자리잡았다. 정면에서 보아 4칸 중에서 동쪽 1칸은 서쪽의 3칸보다 한 단 높게 누마루를 꾸몄고, 동쪽 끝 초석은 장초석으로 처리되었다. 건물 정면 서쪽에서 2번 째 칸 되는 추녀 밑에 '황학정' 현판이 걸려 있다. 북쪽 끝 1칸 양통은 온돌이며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주간 거리는 건물 정면의 서쪽에서 오른쪽으로 2,763mm, 3,051mm, 2,820mm, 2,793mm 이며, 측면은 정면에서 뒤로 2,787mm, 2,820mm 이다. 초석의 높이는 290mm, 장초석의 높이는 970mm이고, 대들보까지 기둥의 높이는 2,670mm 이다. 건물은 외벌 장대석 기단 위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동쪽 측면 기둥에는 칠언 절구의 주련(柱聯)을 걸었다. 정면 외부 기둥 사이에는 사분합문을 달았으며, 내부는 우물마루와 연등천장으로 되었다. 건물은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친 무고주(無高柱) 5량가이며,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정자로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이나 간결하고 소박하게 구조로 조영되었다. 건물 서남쪽 뒤로는 샘이 있고 그 뒤 바위에 황학정 팔경을 노래한 시를 음각하였으며, 건물 오른쪽인 동북쪽으로는 사모지붕의 한옥 한천각(閒天閣)이 있고, 그 서쪽 뒤로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사우회관(射友會館)이 있다.
6.7Km 2024-07-22
서울특별시 성동구 상원12길 24-1
그라데이션커피는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 2번 출구 성원어린이공원 인근에 있다. 매장에 전용 주차장은 없다. 복잡한 도심 속에 있다 보니 자가용보다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1층에 있다. 매장 내부는 현대적이고 넓은 바 테이블 스타일로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 대표 메뉴로는 오늘의 블랙커피,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등이 있고 이외에 밀크티, 모카 등이 있다.
6.7Km 2024-11-12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세계도시로 성장한 서울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변해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가늠해 보는 곳이 서울역사박물관이다. 서울의 뿌리와 서울 사람의 생활, 현대 서울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설전시와 함께 서울의 역사·문화를 증언하는 다양한 기증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어린이와 가족, 어른들을 위한 각종 체험교실과 문화행사들이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다.
6.7Km 2024-10-14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홍화문은 조선 광해군 8년(1616)에 세운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는 금천교 동쪽, 즉 현재의 구세군 빌딩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1910년에 경성중학교를 건립하고자 궁내의 많은 전각을 헐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 후 일제는 1932년 남산 자락에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위한 사당인 박문사(博文寺)를 건립할 때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해방 후 박문사는 폐사되고 흥화문은 영빈관(迎賓館) 및 신라 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8년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 계획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지금의 자리로 이전(移轉) 복원하였다. 그러나 원 자리는 동향을 보고 배치했다고 하나, 그 위치는 현재 찾기 힘들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의 다포 양식 건물로, 정전인 숭정전, 황학정과 더불어 건축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6.7Km 2020-03-25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6가길 2
02-757-8883
#본 업소는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으로 외국인만 이용이 가능하며 내국인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B my guesthouse는 서울 여행의 시작을 위한 이상적인 장소로 명동에 위치하고 있다. 남산 케이블 카, 회현 지하 쇼핑센터, 신세계 백화점 본점과 같은 많은 도시의 명소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이다.
6.7Km 2024-06-10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사적 덕수궁은 본디 왕궁이 아니었다.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8)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임금은 의주로 피난 갔다가 한양으로 환도한 뒤 덕수궁에서 머물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고쳐 부르고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만을 유폐시켰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고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요즘 와서는 경운궁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덕수궁엔 지난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 및 석조전 등에 불과하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일제에 의해 독살당하여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 대한문 - 대한문은 현재 덕수궁의 정문이다. 이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고, 궁궐의 동문이었다. 대안문은 1906년에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판 글씨는 당시 한성부 판윤을 지냈던 남정철이 썼다. * 광명문 - 이 문은 왕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으로 광무 8년(1904)에 큰불이 나서 타 버린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1938년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정동에 있던 흥천사(興天寺)의 범종과 창덕궁 보루각에 있던 자격루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같이 옮겨 세웠다. * 석조전 - 대한제국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광무 4년(1900)에 착공하여 융희 3년(1909)에 준공한 석조 건물로,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지은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외관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정면에 있는 기둥의 윗부분은 이오니아식으로 처리하고 실내는 로코코풍으로 장식하였다. 전체는 3층인데 1층은 접견 장소로, 반지하층은 시종인들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었고, 2층에는 황제가 거처하였다.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국립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였다. * 함녕전 - 보물로 지정된 함녕전은 1897년 건축하여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건물로, 1904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을 같은 해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이 함녕전에서 돌아가셨다. 그 후 비어 있던 이곳에 당시에 사용하던 가구, 서화, 집기 등을 배치하여 100여년 전의 궁중 생활상을 새롭게 재현하였다. * 중화전 -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전으로 조선 제26대 왕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의 근대 국가 건설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정전 안에서 어좌(御座) 바로 위의 닫집을 보면 용을 한 쌍 볼 수 있는데 이는 정전 천정의 용과 같은 문양으로 덕수궁이 대한제국 황제의 황궁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중화전은 1902년에 중층으로 건립되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 단층으로 중건된 것이다. * 중명전 - 중명전(重明殿)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Seredin Sabatin)의 설계로 1897년부터 1901년에 걸쳐 건립된 황실도서관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서양식 건물로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렀다. 2009년 12월 복원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전시관(‘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 그 밖에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정관헌, 덕홍전, 보루각 자격루 등이 있다.
6.7Km 2024-08-30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1522-2295 (궁능 활용 프로그램 전화 상담실)
<밤의 석조전>은 전문 해설사와 함께하는 '석조전 야간 탐방'과 클래식 연주를 들으며 고종이 사랑했던 가배차(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테라스 카페 체험', 고종 황제의 이야기를 담은 '고종, 대한의 꿈' 뮤지컬 공연 관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덕수궁 야간 관람 프로그램이다. 2021년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높은 만족도와 호응에 힘입어 2022년 정식 개최되었으며, 2023년부터 반기별로 운영되고 있다. 궁인의 안내에 따라 대한제국 황실의 이야기를 품은 덕수궁 석조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6.7Km 2024-10-11
서울특별시 중랑구 용마산로 250-12
용마폭포공원은 총 세 갈래의 인공폭포 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공원이다. 중랑구 안에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유명한 봉화산, 용마산, 망우산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은 해발 348m의 용마산이다. 용마산은 아차산의 최고봉으로 면목동 동편에 위치한다. 망우리 공원, 중곡동 간의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를 통해 망우리에서 아차산성을 거쳐 어린이대공원 후문까지 이어진다. 용마폭포공원은 용마산 자락에 들어선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암반채석으로 생긴 높은 바위절벽을 최대한 이용하여 만든 3개의 인공폭포가 지난 1997년 4월 완공되어 그해 5월 준공식을 가졌다. 주 폭포인 용마폭포는 51.4m이고 용마폭포 좌측에는 21.4m의 청룡폭포가, 우측에는 21m의 백마폭포가 자리하며, 그 밑에 7백여 평의 연못이 설치되어 새로운 용마폭포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폭포수의 장관도 멋지거니와 이곳에는 시민광장, 잔디광장이 마련되어 있고 조형전시벽이 설치됨으로써 시민의 휴식공간은 물론 각종 문화행사가 계절별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6.7Km 2024-05-22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59
국립극장은 1950년 4월 29일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으로 설립됐다. 전통예술을 동시대 예술로 창작하는 국내 유일의 제작극장으로, 대극장 규모의 '해오름극장(1,221석)'과 중극장 규모의 '달오름극장(512석)', 소극장 규모의 '별오름극장(100석)'을 비롯하여 원형무대 구조의 '하늘극장(627석)'을 가지고 있다.
전속 예술단체로는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소속해 있으며, 다양한 신작과 레퍼토리 작품으로 국민과 호흡하고 있다.
2012년 9월부터는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한 이후 전속단체는 물론, 국내외 예술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공연기관으로서 공연예술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를 견인하고 있다.
6.7Km 2022-06-16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0길 71
02-318-4790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한식전문점으로 다양한 종류의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이다 . 상호는 남산의 옛 이름인 목멱산에서 따왔다고 한다. 놋그릇에 밥과 나물 등 비빔 재료가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