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테마과학·박물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한얼테마과학·박물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한얼테마과학·박물관

한얼테마과학·박물관

0m    33545     2023-03-20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대신1로 298
031-881-6319

여주 대신면 옥촌리 폐교된 분교터에 자리잡고 있는 한얼테마과학·박물관은 지하철 1호선 안에 유물 보관작업을 시작해 과학문화관, 전적유물관, 고문서유물관, 카메라유물관, 의학유물관 그리고 산업디자인유물관 총 7개의 박물관으로 이루어진 세계최초의 박물관 단지이다.

여주시 수상센터

여주시 수상센터

10.0 Km    1     2023-09-20

경기도 여주시 강변북로 163

경기도 여주시에 소재하고 있는 수상레저시설이다. 여주시에서 운영하고 있어 더욱 깔끔하고 확실하게 관리되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누구나 한 번 쯤 수상레포츠를 찾는 가운데에 여주 남한강에서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여주시의 자랑이다. 여주시 수상센터에서는 카누와 카약 등 수상활동이 가능하다. 보는것만으로도 시원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상활동을 찾는다면 여주시 수상센터는 꼭 한 번 쯤 찾아가봐야할 장소이다.

용문천년시장 / 용문전통시장 (5, 10일)

용문천년시장 / 용문전통시장 (5, 10일)

10.1 Km    21823     2023-12-29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중앙1길 19
031-771-6172

용문전통시장은 양평의 3대 전통시장 중 하나로 경의중앙선 용문역과 터미널에서 가까워 이용객의 접근이 매우 편리한 볼거리가 많은 관광형 시장이다. 상설로 열리는 용문천년시장과 용문 5일장으로 나뉜다. 2015년 용문천년시장이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주관하는 골목형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되었고, 2017년부터는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에 선정돼 2019년까지 사업을 추진하였다. 2018년에는 가로환경정비사업(디자인거리조성사업)을 통해 전선 지중화를 완료했으며 등용문 광장에 용문산 천년 은행나무를 모티브로 하여 등용문 조형물을 설치하고 소원성취존 및 버섯국밥거리를 조성하였다. 5일과 10일에 열리는 용문5일장은 경의중앙선 용문역에서 하차하면 바로 200여개의 좌판이 벌어지는 전통시장이다. 경기 상생 공유마켓을 장날에 운영하여 각종 핸드메이드제품과 지역특산물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소규모 문화공연을 개최하여 단순히 쇼핑을 즐기는 공간이 아닌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치는 문화와 예술이 있는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골집

시골집

10.1 Km    0     2023-10-30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당전로 1

여주의 한식 음식점이다. 스카이밸리CC, 루트52CC 등 다양한 컨트리클럽과 밀접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라운딩 전후 모두 방문하기 좋은 음식점이다. 특히 이른 새벽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활동 전 속을 채울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 단체 예약이 가능한 것도 시골집의 특징이다. 여주 시골집의 음식은 돌솥제육볶음, 소고기뭇국, 배추된장국 등 속을 따뜻하게 채우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메뉴들이 특징이다. 시골집에서는 다양하고 정갈 맛의 10가지 반찬과 짜지 않고 진한 맛의 식사메뉴 채워진 상에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호남묵은지

호남묵은지

10.2 Km    0     2023-10-18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대흥로 204

호남묵은지는 양평군 양평읍에 있는 묵은지를 이용한 삼겹살, 닭볶음탕 전문점이다. 불향을 입혀 초벌구이한 삼겹살과 직접 담근 묵은지를 돌판에 구워 먹을 수도 있고 묵은지에 닭 한 마리를 넣어 끓인 묵은지 닭볶음탕을 먹을 수도 있다. 묵은지 전골도 추천할 만한 메뉴이다. 묵은지 닭볶음탕을 먹으면 공깃밥으로 식사할 수도 있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면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다양한 밑반찬은 매일 직접 조리하는 것들이고 손맛이 많이 들어간 장아찌들이다. 필요한 반찬은 추가로 먹을 수 있다. 주차장은 매장 앞에 널찍하게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길조식당

길조식당

10.2 Km    1     2022-10-04

경기도 여주시 당전로 5

길조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에 있는 한식집이다. 골프장 맛집, 해장국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골프장으로 가기 전 식사를 위해 들르는 손님이 많다. 고송소고기해장국의 '고송'이라는 말은 표고버섯과 송이버섯을 합친 단어로 그만큼 버섯이 듬뿍 들어가는 길조의 대표 메뉴이다. 한우 양지와 버섯, 무가 가득하고 송이버섯의 은은한 향에 국물은 깊고 진하면서 시원하고 개운하다. 아욱우렁탕도 인기 메뉴인데, 아욱과 우렁이 듬뿍 들어가 있고 조미료 맛이 아닌 재료 본연의 깔끔하고 담백한 감칠맛이 좋다. 고사리우렁탕도 우렁의 씹히는 맛과 부드럽고 고소한 고사리 맛이 잘 어울리고 국물이 시원하다. 돼지고기와 우렁을 듬뿍 넣어 알맞게 얼큰한 맛으로 끓여낸 우렁고추장찌개도 인기다. 6가지의 밑반찬은 정갈하게 나오고 1인당 달걀프라이가 1개씩 나온다. 근처에 백로 왜가리서식지가 있고, 5km 이내에 여주도자세상, 여주박물관, 영월루, 달맞이공원, 신륵사, 다수의 골프장이 있다.

동네막국수

동네막국수

10.2 Km    2     2024-04-23

경기도 여주시 현암3길 28

동네막국수는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해 있다. 메밀면을 직접 뽑아서 만들기 때문에 적당한 찰기가 있어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막국수 전문점이라 메뉴가 단순하다.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온막국수가 있으며, 같이 곁들여 먹으면 맛있는 편육이 있다. 비빔막국수는 메밀면 위에 비빔양념, 계란, 김가루, 오이채, 깨소금이 듬뿍 올려져 나온다. 참기름의 고소함이 매콤 달콤한 양념장과 조화를 잘 이룬다. 양념 맛이 강하지 않으나 독특한 감칠맛으로 계속 끌린다. 물냉면과 온냉면은 뽀얀 육수가 담백하고 고소하다. 막국수에 식초나 겨자를 넣지 않고 제공해 주는 대로 먹는 것도 좋다. 육은 잡내 없이 한방의 향이 은은히 나고 수분도 적당하여 촉촉하다.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도 좋아 부드러운 고기 맛과 쫄깃하고 고소한 비계의 맛이 조화롭다.

두리캠핑장

두리캠핑장

10.2 Km    0     2023-11-01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 이여로 778-10

여주에 있는 두리캠핑장은 깨끗하게 관리된다고 입소문이 난 곳으로, 서울 인근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보니, 예약이 쉽지 않다. 파쇄석 16개와 데크석 7개가 있고, 일부 사이트는 타프도 설치되어 있다. 당일 피크닉용 사이트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브런치, 고구마, 김치를 비롯 음식 예약도 가능하다. 지정된 사이트의 경우 애견 동반도 가능한데, 2회 이상 캠핑장을 이용한 경우에 한해 예약할 수 있다. 동절기에는 장박 위주로 이용 가능하다.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10.3 Km    55177     2024-04-04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 54세로 승하하실 때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태조6년(1397년)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조선조 제3대 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8년 (1408년) 음력 2월11일(양력 3월17일)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같은 해 2월 16일(양력 3월22일) 우부대언 심온의 딸(소헌왕후 심씨)과 결혼하였다.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영릉의 특징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 명하여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세종대왕의 업적
1) 한글창제
대왕은 궁중에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음력) 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익히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글 창제의 더 큰 의의는 한문을 무조건 숭상하던 많은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 학문창달
대왕은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집현전을 부활하여 우수한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하고 옛 제도를 연구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토록 하였다. 우선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농사직설·고려사·삼강행실도·팔도지리지·석보상절·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육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田(전)제)와 세제를 정비하는 등 문물제도를 크게 개건하였다.

3) 과학의 진흥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한 평생을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등 을 만들었다. 또한 측우기를 제작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토록 했으며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수위를 재게하고 외국의 역법(曆法)을 참작하여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리하여 천문·지리 등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4) 외치와 국방
대왕은 역대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를 건너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 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는 한편 3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선진관계를 도모하였다. 북방으로는 최윤덕으로 하여금 평안도의 야인을 평정케하여 4군을 설치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함경도에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시키는 등 국력을 강하하였다.

5) 음악의 정리
조선 초기 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정리하였는 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이었다. 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 효종대왕릉의 형태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고,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사라져 왕릉 배치에 있어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이다.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 대동법과 상평통보, 효종에 대하여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

10.3 Km    2934     2023-08-10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에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