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Km 2025-04-07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물탕2길 17
043-846-3605
최초의 자연용출 수안보 온천수의 영구분출을 기원하는 축제행사로 온천도시의 위상을 높이고 수안보의 관광발전 도모한다. 조선시대 왕이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들렀다고 하는 수안보온천에서 온천욕도 하고, 버스킹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수안보 석문천변에는 벚나무가 쭉 이어져있는데 온천제 기간 만개한 벚꽃길을 산책도 하고 전통의상 대여하여 사진촬영도 할 수 있다.
15.3Km 2025-03-24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물탕2길 9
RI 온천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객실 내부에 가족탕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온천이다. 이 덕분에 프라이빗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RI 온천은 괴산 IC와 수안보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RI 온천 호텔은 원형 욕조와 히노끼(편백나무) 탕 두 가지 버전으로 방이 준비되어 있다. 원형 욕조는 고급 월풀 욕조이며 호텔의 온천수 역시 객실까지 순수 천연 욕조수를 직수로 공급하고 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여 내부가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주변에는 조령산자연휴양림이 있어 연계 관광에 나서기 좋다.
15.3Km 2024-05-22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조산공원길 7
0507-1287-7714
수안보를 감싸 안는 산간 마을의 소박함과 옛사람들의 발자취가 어우러진 수안보!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그 명성을 살려 자체 개발한 온천에 자리 잡은 한국콘도 수안보는 새로운 삶의 활력을 주는 휴식처이다. 더욱이 단양 팔경, 충주호, 월악산, 문경새재, 탄금대 등의 명소와 골프장, 스키장 등을 비롯한 주변의 레저 시설들은 종합 관광 휴양지로서의 만족을 준다. 단양 고수 동굴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 동굴 중 하나다. 탄금대에는 문화원, 야외음악당, 조각공원, 감자꽃노래비, 궁도장 등의 시설이 있어 시민 휴식처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제1관문 안에는 KBS에서 방영한 대하드라마 ‘왕건’의 초대형 세트장이 들어서 있다. 충주호 주변에는 월악산 국립공원과 금수산, 육순봉, 구당봉 등 단양팔경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사철 변하는 모습이 푸른 물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면 충주호 수상관광을 즐기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5.3Km 2025-04-17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월악로 1372
043-651-7001~2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아름다운 자연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지만 머무는 여행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흠뻑 빠져들어 땀 흘리고 온전히 느껴보는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 촉촉이 내리는 빗방울, 소복이 쌓이는 눈 속에서 숨겨진 장소들을 발견하고 마음껏 탐험한 후에, 고요하고 차분한 숙소에서 오롯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15.3Km 2025-04-18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
충주 견학리 토성은 충주시 신니면에 있는 철기시대의 작은 토성이다. 이 토성은 낮은 구릉 지역의 끝자락에 축조된 토축성으로 규모가 작은 판축 공법이 적용되었다. 현재 서쪽 성벽은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진 상태이고 남벽과 북벽도 일부 무너졌다. 전체 둘레는 200미터가 약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성벽의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로 보인다. 발굴조사 시 출토된 유물로는 목 부분에 물결무늬가 시문된 것과 편병, 어골문 기와 등이며 출토유물 대부분은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특징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고, 10세기를 중심으로 한 신라 후기의 사회상을 살필 수 있는 유적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곳은 후삼국시대에 호적 세력의 거점이 되었다가 고려 시대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은 곳으로 보인다. 현재 토성 내부는 농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견학리 토성은 규모가 크지 않아 일부러 찾아오기보다는 근처를 여행하는 길에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토성의 성벽이 뚜렷하게 남아있고 길가에서 1분이면 올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15.3Km 2024-05-30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탑골1길 36
043-846-2331
수안보파크호텔은 넓은 객실과 연회장, 한/양식당, 초현대식의 노천온천탕과 맥반석 사우나, 천연온천, 실내수영장, 산책로, 조깅코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수안보 여행의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특히 탁 트인 수안보의 사계와 함께하는 노천탕이 있다. 수안보파크호텔에는 고객의 건강을 위한 테니스장도 별도 설치되어 있어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산뜻한 기분을 즐길 수 있으며 좋은 분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 기회도 제공해 드리고 있다.
신관 1층에 위치한 한국도자기 전문 매장은 본차이나, 슈퍼스트롱 등 한국도자기의 여러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15.3Km 2025-04-07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주정산로 35
수안보온천은 태고로부터 자연 용출되어 온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현종 9년 당시에도 존재했고,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악성피부병 치료를 위해 수안보 온천을 이용할 정도로 유서 깊은 온천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온천수를 중앙 집중관리 방식으로 충주시에서 관리하며, 온천자원 보전에 주력하여 인체에 유익한 각종 무기질을 함유한 양질의 온천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안보 온천수는 지하 250m에서 용출되는 약알카리성 온천으로 칼슘, 나트륨, 불소, 마그네슘, 리튬 등 인체에 이로운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수안보 온천수를 이용한 족욕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줌으로써 긴장된 몸의 근육을 이완시켜 심리적 안정감도 더해주며 피로와 스트레스를 없애고 숙면에 큰 효과가 있다.
15.3Km 2024-12-03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탑골1길 3
043-848-2430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한 양지말 가든은 꿩 요리 전문점이다. 꿩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꿩 불고기, 꿩 육회, 꿩 만두, 꿩 샤부샤부, 꿩 탕수육, 꿩 튀김, 칼국수 등을 맛볼 수 있다. 직접 재배한 야채로 만든 밑반찬과 깔끔 담백한 맛의 꿩 요리를 맛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다.
15.3Km 2025-04-24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족동2길 197
장병산에 있는 신흥사는 산속에 있는 사찰로 대웅보전에 봉안된 석조 나한상이 있다. 신흥사는 1890년에 창건되었고, 1924년에 중건되었다. 이곳의 십육 나한 중 현재 4구만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4구의 나한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크기가 비슷하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어서 다른 나한상과 다른 독특한 양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목구비와 두건의 모습, 삼도, 의문, 옷 주름 등 상반신부터 하반신의 표현이 섬세하게 드러난 나한상으로 불상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석조 나한상은 근래에 채색하여 본래의 색상은 알 수 없으나 원형은 잘 보존된 상태이다. 원래 토제불상 1구와 석고 나한상이 6구 있었는데 토제불상은 훼손이 심해 땅에 묻고, 북쪽 바위벽에 있던 목이 잘린 나한상 2구는 도난당했다고 한다. 엄정면 일대는 고려 시대에 큰 사찰이 있던 곳으로 신흥사 석조 나한상은 이 절터에서 다른 유물과 함께 출토되었다. 나한상들을 통해 신흥사는 십육 나한을 봉안하는 나한 도량으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15.3Km 2025-03-17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 1801
황강 영당은 조선 주자학의 대가인 송시열과 그의 제자인 권상하와 권상하의 제자 한원진, 윤봉구, 권욱의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과 수암 권상하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제천시 수산면 탄지 삼거리에서 송계 3교를 건너면 길 오른쪽에 제천 황강 영당 및 수암사가 있다. 황강 서원은 1726년에 건립하고 다음 해에 사액을 받았다. 원래 황강 서원은 권상하의 거주 공간인 한수재에 소재한 것이 아니라 한수재로부터 황강 상류 지역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다른 사당이나 서원보다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조금은 높은 담장으로 둘려 있다.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면서 한수재의 서재로 사용하던 건물에 영정을 봉안하면서 황강 영당이라 하였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 지구로 편입되면서 1983년 현재의 위치인 송계리로 옮겨 세웠다. 황강 영당은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팔작지붕이다. 수암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 건물이다. 조선 후기 정치사적 영향에 따라 서원으로 사액까지 받았으나 영당으로 바뀌게 된 사례로서, 서원 철폐령 이후 서원 건축의 잔존 양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