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M 2023-10-17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는 중대 적멸보궁과 관련하여 작성시기가 다른 2종의 불량문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책은 그중의 하나다. 중대는 오대산신앙의 중심이며, 적멸보궁은 비로자나 법심불이 상주하는 장소로서 일찍부터 신성시되어 왔다. 또한 불량이란 뜻은 문자 그대로 부처님의 양식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보다는 어떤 전각이나 불상을 영구히 유지하기 위한 재정적인 후원을 의미한다. 『오대산중대불량문(五臺山中臺佛糧文)』은 조선후기의 중대 적멸보궁의 중창사실과 이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일반 시주자 및 인근 사찰의 시주 스님을 기록한 것이다. 겉장은 황색 표지이며, 표지에는 ‘보궁유진 중대불량문’이라고 되어 있어서 적멸보궁(중대)에서 보관용으로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주단변과 계선을 검은색으로 그렸고, 반곽 8행에 글자 수는 16자~25자로 불규칙하다. 모두 2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반엽 34.7㎝×26.6㎝, 반곽 27.3㎝×23.6㎝이다. 첫 장의 ‘오대산중대 적멸궁불량단록서’는 재물을 출연하여 시주하는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발문으로 사문경의가 작성한 것이다. 그리고 앞쪽에는 김수재를 비롯한 일반 대시주자의 이름과 소원문이 보이고이어서 본사 비구를 비롯하여 인근의 건봉사 및 경상도 은해사 스님들의 시주명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이를 증명하는 각사찰명이 지역별로 기재되어 있다. 간기는 말미에 ‘갑술육월일 적멸보궁서’로 표기되어 있는데, 연호 표기가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화주 영담 스님이『오대산중대불량계원수복문』(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5호)의 연기에도 나타나고 있어 갑술년은 1814년(순조 14)으로 판정된다. 따라서 이 책은 1814년 화주 영담 등이 중심이 되어 사문경의가 취지문을 작성하고 각 사찰 불자의 시주명을 기재하여 책으로 만들어 적멸보궁에 보관했던 것으로, 조선 후기 적멸보궁의 중창 사실과 이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일반 시주자 및 인근 사찰의 면면을 알 수 있고, 당시의 사찰 연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84.0M 2023-07-02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이 동종은 조선시대의 종 중에서도 극히 퇴락한 형식으로 양식적으로는 대수롭지 않지만 1787년(정조 11) 화천 용화산 용다사에서처음 주성되었다는 소위 원명과 1878년(고종 15) 양구 심곡사에 시주되었다는 추명이 있지만, 원주 구룡사에서 보관해 오던 동종이다.
이 시기에 한글 명문이 새겨진 종이 드물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1977년부터 강원도향토박물관에서 전시되다가 1999년 9월 월정사로 옮겨져 현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종의 정상부에는 한 몸체에 용머리가 서로 반대쪽으로 있는 오메가(Ω)형[一體雙頭形]의 용뉴가 있다. 천판(天板)은 반구형(半球形)으로 종신(鐘身)과의 사이에는 한 줄의 띠를 돌려 구분하고 있는데, 용뉴를 중심으로 연꽃무늬를 조잡하게 돋을새김(陽刻)하였다. 종신에는 세 줄의 띠를 돌려 4개의 부분으로 구획하였을 뿐, 상, 하대와 보살입상, 유곽 등 일체의 장식을구비하지 않고 소면(素面)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종신의 상단부와 하단부에 각각 한글과 한자로 된 명문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중 하단부의 한자 명문은종을 처음 주성할 때의 주종기로, 1787년(건륭[乾隆] 52, 정조 11) 낭천(狼川) 용화산(龍華山) 용다사(龍茶寺)에서 처음 종을 주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낭천은 현재의 화천군이며, 용화산은 화천군과 춘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나 용다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상단부의 한글 명문은 종을 다시 시주될 당시의 발원문으로, 한글을 굵은 글씨로 잘 새기고 붉은 칠을 하였다. 내용은 1879년(광서[光緖] 5, 고종 16) 경성에 거주하는 청신녀(淸信女) 황씨(黃氏, 법명 蓮池願)가 양구군 동면 팔랑리의 심곡사에 시주했다는 것으로, 이러한 사실은《건봉사본말사적(乾鳳寺本末史蹟)》의 심곡사사적(深谷寺史蹟)에서도 확인된다.
이 종은 양식적으로 대수롭지는 않지만 소위 원명(原銘)과 추명(追銘)이 있으며, 이 종을 모셨던 두 절의 이름이 나오고, 한글명에대해서는 문헌에서도 확인이 되며, 이 시기에 한글명문이 새겨진 종은 그 예(例)가 드물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84.0M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정영호교수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지니는 특수한 양식을부재별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전체적으로 석탑의 평면이 8각형을 이루고 있어 선대의 방형 평면에서 벗어났다는 것,
둘째 다각이고 다층인데 그 특징이 있다.
셋째 기단부에 있어서 하층기단에 안상을 조각하고 연화대를 마련한 데에서 화사하고 장식적인 의장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상단괴임대와 탑신괴임석이 끼어져 있는 것도 한 특색이라 하겠다.
넷째 탑신부에 있어서 각 옥개석 하면의 처리가 각형과 호형받침으로 특이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각층의 체감률이 적으나 기단부가 안정되어 오히려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리고 상륜부재의 장식은 마치 공예탑의 일면에 보이는 것으로 나아가 석탑 전체를 장식적인 형태로 보이도록 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이 석탑만의 특이성이라 하겠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국보 제48-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15.2m이다.
기단부는 4매로 결구된 팔각형의 지대석 위에 놓였는데 하층기단의 면석도 4매의 돌로 짜여졌으며, 8각의 각 면에는 2구씩의 안상이 음각되고 하층기단의 갑석 또한 4석으로 짜여졌는데 위에는 복판의 복연이 조각되었다.
그 위에는 상층기단 중석과의 사이에 별석이 삽입되었고, 별석의 윗면에는 괴임이 얕게 마련되었다. 탑신부는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서서히 줄어들었으나 급격히 줄지 않고 2층 옥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의 옥신을 유지하고 있는데 옥신석 또는 옥개석의 크기에 따라 2개 내지 3개의 석재를 사용하였고 상층부는 1석씩이다. 상륜부는 완전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노반ㆍ복발ㆍ앙화ㆍ보륜까지는 석재이고, 그 이상의 보개ㆍ수연ㆍ용차ㆍ보주 등은 금동제로 조성되었다. 찰주는 수철제(水鐵製)로 전체길이 4.3m인데 하부는 굵으며상부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상으로 9층에서 8층 옥개석까지 박혀있으며, 하부는 철편으로 고정시켰다. 중적된 상륜부재는 처음 석탑을 건립하였을 때의 것으로 보여지는데, 보개만은 여러차례 수리가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
1970년 10월 해체 복원시 5층 옥개석에서는 완형의 은제도금아미타여래입상(銀製鍍金阿彌陀如來立像, 높이 : 9.7㎝) 1구가, 1층 탑신 상면의 사리공에서는 각종 사리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1층 탑신석에서 청동거울 4점, 청동합과 담홍색 사리 4과가 봉안된수정사리병, 전신사리경(全身舍利經), 금동방형향갑(金銅方形香匣), 황라니금연화수향(黃羅泥金蓮花繡香), 쌈지, 자색비단향주머니, 향초금보(香草錦褓) 및 향나무편과 향편(香片)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1ㆍ2ㆍ6ㆍ9층의 옥개석은 새로 조성되었다. 한편 이 석탑의 앞에는 한쪽 무릎을 꿇은 석조보살상 1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은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과 같은 형식이다. 이 석탑은 여러차례의 화재로 인하여 각 부재의 손상이 심하지만, 우수한 균형미를 구비하고 있어 고려시대 다각다층의 대표적 석탑이며, 분포면에 있어 팔각다층석탑으로는 가장 남쪽에 건립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147.0M 2023-08-09
겨울에는 겨울에 맞는 여행지가 있다. 오대산 월정사가 그런 곳이다. 오대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암자도, 그곳으로 드는 관문인 전나무 숲길도 하얀 눈이 내리면 설국으로 변한다. 전나무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눈을 이고, 월정사 전각의 지붕도 눈을 품는다. 찬바람 불어도 춥게 느껴지지 않는 오대산의 겨울 풍경 속으로의 여행.
1.5Km 2024-10-18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98
한강시원지체험관은 택리지, 여지도서, 세종실록 등 여러 기록에 남아있는 한강 시원지 우통수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개관한 곳이다. 물의 질이 뛰어나고 다른 물과 섞이지 않는다는 우통수가 한강의 시원으로 여겨졌다고 한다는 역사적 특징을 반영해 다도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맛보며 우통수의 역사를 둘러보고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6Km 2023-07-01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82
1868년(고종 5)에 제작되어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필선과 구도, 본존과 보살상의 얼굴모습, 산처럼 높이 솟아 있는 육계와 계주의 표현, 전체의 색조가 붉은 색과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점 등 19세기 중엽 이후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갖추고있으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작품으로 그 보존가치가 크다.
이 탱화는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보덕사의 사성전에 봉안되어 있던 것인데, 1998년 9월 2일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중에 있다. 화기(畵記)와 복장주머니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을 통해 1868년(고종 5) 자우(慈雨), 창우(敞遇), 창택(敞澤) 등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에는 커다란 불좌상(佛坐像)이 있고 그 좌우에는 보살입상(菩薩立像)이 배치된 후불탱화(後佛幀畵)이다. 중앙의 본존(本尊)은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고, 왼손은 발목 위에서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다. 본존은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높고 뾰족하게 솟아 있으며, 커다란 정상계주와 반달형의 중심계주가 뚜렷하다.
본존 앞에는 오른쪽에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普賢童子)가, 왼쪽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文殊童子)가 있다. 본존의 좌우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쓴 보살입상이 꽃가지를 들고 서있고, 그 뒤로는 10대제자가 좌우에 각 5구(軀)씩 배치되어 있다.
이 불화는 조성기를 통하여 정확한 제작연도와 작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지극히 양호한 작품이다. 또한 필선이나 구도, 본존 및 보살상의 얼굴모습, 그리고 산처럼 높이 솟아 있는 육계나 계주(계珠)의 표현, 아울러 전체의 색조가 붉은 색과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점 등은 19세기 중엽 이후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복장유물로 원문(願文)은 1868년(同治 7년, 고종 5년) 탱화를 조성하면서 발원하는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기타 복장유물로는 다라니 2매와 후령통 1점 등이 있다.
《복장유물》
복장유물은 이 탱화의 상단에 걸려 있던 복장주머니에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원문(願文) 1매, 후령통(喉鈴筒) 등 《조상경(造像經)》의 「제불복장단의식(諸佛腹藏壇儀式)」에서 밝히고 있는 품목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원문은 1868년(同治 7년, 고종 5년)에 탱화를 조성하면서 발원하는 내용을 기록하였는데, 화기와 비슷한 내용이다. 복장주머니(腹藏囊)는 탱화의 상단에 본존(本尊)을 중심으로 좌우에 하나씩 2개가 걸려 있는데 삼산형(三山形)의 상부와 타원형의 하부 등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령통(가로 11㎝, 세로 3.3㎝, 높이 15㎝)은 사각형으로 종이로 만들었는데 위아래에한 글자씩 붉은 범자(梵字)를 썼고 안에는 5색(紅, 黃, 白, 靑, 綠)의 종이로 싼 오색의 실이 들어 있다.
그 외에도 후령통을 쌌던 보자기(黃梢幅子), 팔엽대홍련주(八葉大紅蓮呪), 천원(天圓), 지방(地方, 금강을 나열한 그림), 범자로쓰여진 진언(眞言) 2매(26×21㎝, 19.8×19.8㎝)와 오륜종자(五輪種子), 오방경(五方鏡), 범자를 한 글자씩 적은 작은 종이 등이 남아 있어 조상경(造像經)의 제불복장단의식(諸佛腹藏壇儀式)에서 언급된 의불화 복장의 일체 유물들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1.6Km 2023-11-01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82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에 모셔진 보살상으로, 현세에서 자비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지닌 관음보살을 표현한 작품이다. 손이 왼쪽과 오른쪽 어깨에 각각 3개씩 모두 6개가 달려 있어 육수관음보살로 불리며 금동으로 주조되어 있다. 머리에는 삼면화관(三面花冠)을 썼는데 꽃무늬와 불꽃 모양의 구슬이 새겨져 있으며, 양어깨에는 땋은 것 같은 두 가닥의 머리카락이 늘어져 있고, 노출된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달린 목걸이가 길게 표현되었다. 6개의 손목에는 정교한 팔찌가 끼워져 있다. 상체는 나형(裸形)이나 천의(天衣)가 걸려 있으며 목과 가슴에는 영락(瓔珞)이 늘어져 있다. 불상(佛像)은 양어깨에서 3개씩의 팔이 뻗어 나와 6개의 손을 만들었으며 모든 손에는 정교(精巧)한 팔찌가 조식(調飾)되어 있다. 불신(佛身)은 가냘픈 모양이며 상체에 비해 하체가 비만하여 무릎 폭이 넓고 무릎을 덮고 있는 옷 주름의 표현은 투박하고 형식화되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무릎 밑에 놓인 대좌(臺座)는 불신(佛身)의 윤곽을 따라 타원형이 되었고, 윗부분에는 단판연화(單瓣蓮花)를 앙련(仰蓮)으로 아랫부분은 복련(伏蓮)으로 연결되었다. 상하 끝에 각각 연주문(聯珠紋)이 있다. 불신이 가냘프고 불상의 주조법이 빼어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고, 6개의 손이 돌출되었지만 어색한 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작품으로는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체 높이는 45㎝이다.
1.7Km 2023-08-09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때론 장소를 옮겨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의 힐링이 필요하다. 평창으로 떠나보는건 어떨까? 약 300평의 전시규모를 자랑하는 인형박물관에서 평소 접하지 못했던 전시품들을 조용히 관람해보자. 또 싱그러운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발왕산관광케이블카와 차박과 은하수 등을 볼수 있어 인기인 산너미목장과 육백마지기에서 아름다운 경치로 힐링해보자.
1.7Km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최근까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향하여 놓여 있던 석조보살좌상이다. 1.8m의 크기이다.
두부가 강조되고 하체가 빈약한 점 등 고려시대에 명주라고 통칭되던 강릉의 한송사지, 신복사지 보살상들과 비교하여 신체의 비례가 맞지 않고 경직된 감이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적인 표현에서는 중국 송나라 조각상의 느낌이 전해지는데 대략 고려전기인 11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연산 개태사의 석조공양보살좌상,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처럼 고려초에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탑 앞의 공양보살좌상으로 연대가 서로 비슷하여 강원도 명주 지방에 독특한 불상 조각의 유파가 있었던 것을 시사하며, 고려시대 화엄계통 사원에서 만든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며, 당대 불교사상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7Km 2023-07-01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1759년(영조 35)에 제작된 감로탱화로 전체적으로 필선이 유려하고 그림 전반에 걸쳐 생동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진하고 탁한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18세기 불화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그림이며, 화기를 통해 정확한 제작연대와 작가를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원 오관이 단독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오관의 화풍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자료이므로 지정보존가치가 크다.
감로탱화는 주로 지옥에 빠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해주는 장면을 그린 불화이다.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盆經變相圖)라고도 하는데 목련존자(目蓮尊者)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아귀도(餓鬼道)에 빠져 먹지 못하는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사정하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백중날에 과거ㆍ현세ㆍ7세의 부모를 위해 시방의 부처님과 스님에게 백미(白味)ㆍ반식(飯食)ㆍ오과(五果) 등을 공양하여 어머니를 구제하고 천상에서 복락을 누리게 했다는 우란분경의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따라서 감로탱화는 화면 가운데 차려진 성반(盛飯)을 중심으로 윗부분에는 부처님 일행이 중생을 맞으러 오는 장면과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인도하는 장면 등이 묘사되며, 중앙의 성반 왼쪽에는 제(齋)를 올리는 장면, 반대편에는 서왕모를 비롯한 도교의 신들, 성반 아래에는 아귀와 지옥의 고통스러운 장면과 갖가지 현실생활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감로도는 불교ㆍ유교ㆍ도교 및 민간신앙 등 다양한 사상과 신앙을 결합한 조선시대 불교의 양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불화라고 할 수 있으며, 아울러 하단의 다양한 현실생활상은 풍속화적인 요소를 보여 주고 있어 일반회화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되는 불화이다.
이 감로도에는 성반의 아래에 묘사되는 지옥장면과 현실의 생활 장면은 비교적 간략히 묘사되어 있고, 아미타불 일행이 맞으러 오는 장면이 있는 화면의 상부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면의 상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중앙에 5불, 왼쪽에는 관음ㆍ지장보살, 오른쪽에는 인로왕보살이다.
이들 세 장면은 산악으로 장면 구획하고 있으며, 화면 하부의 지옥과 풍속장면은 산악과 수목으로 장면이 구획되어 있다.
화면은 다양한 장면 묘사로 자유스럽고 생동감에 넘치고 있는데 그러한 생동감은 골이 깊은 산악과 비교적 사실적인 수목 표현으로 더욱배가되고 있다. 진하고 탁한 적색과 녹색, 그리고 배경으로 갈색과 검은색이 채색되어 전반적으로는 어두운 색조를 이루고 있다.
이 불화는 화면에 균열과 채색이 박락된 곳이 몇 군데 보이나 단정한 인물상의 모습과 치밀한 묘선, 탁한 색조 등 18세기 중엽경의 불화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특히 천상부를 강조한 화면의 상부에 표현된 산악의 표현, 재를 올리는 장면과 지옥 및 풍속장면 등에 표현된 인물상들의 살아있는 듯 한 다양한 표정 등은 이 당시 불화로서는 생동감 있는 화면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다.
또한, 화기를 통해 정확한 제작연대(1759년)를 알 수 있고 화원(畵員)으로 오관(悟寬)만이 기록되어 있어 그가 혼자서 그린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오관의 화풍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자료가 된다. 1759년(영조 35)에 제작된 감로탱화로 전체적으로 필선이 유려하고 그림 전반에 걸쳐 생동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진하고 탁한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18세기 불화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그림이며, 화기를 통해 정확한 제작연대와 작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원 오관이 단독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오관의 화풍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