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성전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어성전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어성전계곡

어성전계곡

13.2 Km    36590     2024-06-12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98

어성전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모여 만들어진 남대천의 상류지역으로서 양양 읍내를 거쳐 동해로 흘러든다. 아름다운 산, 아름다운 경치, 깨끗한 물이 흐르는 어성전계곡은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매우 차갑고 시릴 정도이다. 계곡을 타고 오르면 양편으로 칡과 다래 넝쿨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환경이 특징적이다. 계곡 물살이 세지 않고 수심이 낮아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하며 다슬기나 민물고기 등을 채집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어성전계곡 근처에는 캠핑장이 많아 차박이나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법수치계곡, 탁장사 마을, 양양 탁장사마을 등의 관광지가 있어 나들이를 하기에 좋다.

명주사(양양)

명주사(양양)

13.2 Km    21835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만월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고려 목종 12년(1009), 혜명대사와 대주대사가 오대산 동쪽에 있는 만월산에 터를 잡고 창건한 절이다. 두 대사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명주사’라 이름 지었다. 창건 당시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는 점에서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인해 절의 당우를 여러 번 중건하였고, 1910년대에는 건물이 총 15동에 이르는 대가람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고 오늘의 모습은 1979년에 중수한 것이다. 지금의 명주사는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가 남아 있는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문화재로는 양양명주사동종(강원도 유형문화재)과 양양명주사부도군(강원도 문화재자료)이 있다. 높이 83cm의 동종은 조선 숙종 30년(1704)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범종의 모습을 띤다. 절 입구의 부도군은 사찰의 기나긴 역사를 보여준다. 부도밭에는 12기의 부도와 함께 4기의 비석이 남아 있는데,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한데 모아 보존하고 있다.

[주요시설&부대시설]
명주사
명주사부도군

[체험프로그램]
사찰관람

명주사부도군

13.2 Km    2     2023-09-11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명주사에 마련된 이 부도밭에는 모두 12기의 부도가 자리하고 있으며, 4개의 비석도 함께 남아있다. 12기의 부도 중에서 7기는 3단을 이루는 기단 위로 탑몸돌 및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사각의 바닥돌과 둥근 탑몸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나머지 5기는 받침돌 위로 종 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큼지막한 머리장식을 두었다. 4기의 비는 낮은 사각 받침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갖춘 구조이다. 원래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모두 모아 보존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유유자적 평창 즐기기

13.3 Km    1     2023-07-12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때론 장소를 옮겨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의 힐링이 필요하다. 평창으로 떠나보는건 어떨까? 약 300평의 전시규모를 자랑하는 인형박물관에서 평소 접하지 못했던 전시품들을 조용히 관람해보자. 또 싱그러운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발왕산관광케이블카와 차박과 은하수 등을 볼수 있어 인기인 산너미목장과 육백마지기에서 아름다운 경치로 힐링해보자.

석조보살좌상

석조보살좌상

13.3 Km    1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최근까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향하여 놓여 있던 석조보살좌상이다. 1.8m의 크기이다.
두부가 강조되고 하체가 빈약한 점 등 고려시대에 명주라고 통칭되던 강릉의 한송사지, 신복사지 보살상들과 비교하여 신체의 비례가 맞지 않고 경직된 감이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적인 표현에서는 중국 송나라 조각상의 느낌이 전해지는데 대략 고려전기인 11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연산 개태사의 석조공양보살좌상,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처럼 고려초에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탑 앞의 공양보살좌상으로 연대가 서로 비슷하여 강원도 명주 지방에 독특한 불상 조각의 유파가 있었던 것을 시사하며, 고려시대 화엄계통 사원에서 만든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며, 당대 불교사상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감로탱화

감로탱화

13.3 Km    4     2023-07-01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1759년(영조 35)에 제작된 감로탱화로 전체적으로 필선이 유려하고 그림 전반에 걸쳐 생동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진하고 탁한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18세기 불화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그림이며, 화기를 통해 정확한 제작연대와 작가를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원 오관이 단독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오관의 화풍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자료이므로 지정보존가치가 크다.
감로탱화는 주로 지옥에 빠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해주는 장면을 그린 불화이다.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盆經變相圖)라고도 하는데 목련존자(目蓮尊者)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아귀도(餓鬼道)에 빠져 먹지 못하는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사정하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백중날에 과거ㆍ현세ㆍ7세의 부모를 위해 시방의 부처님과 스님에게 백미(白味)ㆍ반식(飯食)ㆍ오과(五果) 등을 공양하여 어머니를 구제하고 천상에서 복락을 누리게 했다는 우란분경의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따라서 감로탱화는 화면 가운데 차려진 성반(盛飯)을 중심으로 윗부분에는 부처님 일행이 중생을 맞으러 오는 장면과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인도하는 장면 등이 묘사되며, 중앙의 성반 왼쪽에는 제(齋)를 올리는 장면, 반대편에는 서왕모를 비롯한 도교의 신들, 성반 아래에는 아귀와 지옥의 고통스러운 장면과 갖가지 현실생활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감로도는 불교ㆍ유교ㆍ도교 및 민간신앙 등 다양한 사상과 신앙을 결합한 조선시대 불교의 양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불화라고 할 수 있으며, 아울러 하단의 다양한 현실생활상은 풍속화적인 요소를 보여 주고 있어 일반회화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되는 불화이다.
이 감로도에는 성반의 아래에 묘사되는 지옥장면과 현실의 생활 장면은 비교적 간략히 묘사되어 있고, 아미타불 일행이 맞으러 오는 장면이 있는 화면의 상부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면의 상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중앙에 5불, 왼쪽에는 관음ㆍ지장보살, 오른쪽에는 인로왕보살이다.
이들 세 장면은 산악으로 장면 구획하고 있으며, 화면 하부의 지옥과 풍속장면은 산악과 수목으로 장면이 구획되어 있다.
화면은 다양한 장면 묘사로 자유스럽고 생동감에 넘치고 있는데 그러한 생동감은 골이 깊은 산악과 비교적 사실적인 수목 표현으로 더욱배가되고 있다. 진하고 탁한 적색과 녹색, 그리고 배경으로 갈색과 검은색이 채색되어 전반적으로는 어두운 색조를 이루고 있다.
이 불화는 화면에 균열과 채색이 박락된 곳이 몇 군데 보이나 단정한 인물상의 모습과 치밀한 묘선, 탁한 색조 등 18세기 중엽경의 불화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특히 천상부를 강조한 화면의 상부에 표현된 산악의 표현, 재를 올리는 장면과 지옥 및 풍속장면 등에 표현된 인물상들의 살아있는 듯 한 다양한 표정 등은 이 당시 불화로서는 생동감 있는 화면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다.
또한, 화기를 통해 정확한 제작연대(1759년)를 알 수 있고 화원(畵員)으로 오관(悟寬)만이 기록되어 있어 그가 혼자서 그린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오관의 화풍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자료가 된다. 1759년(영조 35)에 제작된 감로탱화로 전체적으로 필선이 유려하고 그림 전반에 걸쳐 생동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진하고 탁한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18세기 불화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그림이며, 화기를 통해 정확한 제작연대와 작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원 오관이 단독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오관의 화풍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자료다.

비로자나불후불탱화

비로자나불후불탱화

13.3 Km    3     2023-10-16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이 불화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단독으로 봉안된 드문 형식의 작품으로, 각 존상의 균형 잡힌 신체와 단아한 얼굴, 자그마한 이목구비, 유려한 필선, 짙은 적색과 녹색의 색조 등 18세기 후반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며, 화기에 의해 정확한 제작 연대와 작가를 알 수 있어 당시의 불화를 이해하는데 기준작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 불화는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영원사에 봉안되어 있던 것인데,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하단의 중앙에 화기(畵記)가 있어 1759년(乾隆 24년)에 오관(悟寬), 화운(華雲), 묘심(妙心) 등에 의해 제작되어 원주 치악산 영원사에 봉안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면의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8 보살과 사천왕 그리고 용왕과 용녀가 엄격하게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고 배경은 모두 구름으로채워져 있다. 본존이 비로자나불임에도 좌우협시보살이 관음과 세지보살로 표현되어 있어 특이하다. 가로로 긴 화면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화ㆍ노사나불화ㆍ석가불화의 삼신불화를 함께 봉안한 것이 아니라 비로자나불화를 단독으로 봉안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처럼 삼신불화 형식이 아닌 단독의 비로자나후불탱화는 현존하는 예가 매우 드물다. 키형광배를 지닌 비로자나불은 높은 대좌에서 지권인(智拳印)을 결한 채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불의에는 간략한 꽃무늬가 시문되어 있고, 광배의 내연에는 연주문이 돌려져 있다. 본존은 물론 각 존상의 균형 잡힌 신체와 갸름하고 단아한 얼굴, 지극히 작게 표현된 이목구비, 예리한 묘선으로 표현된 치밀한 구성, 어둡고 탁한 암적색과 암녹색의 구사 등 18세기 후반의 불화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균열과 채색의 박락이 심하지만 안정된 구성과 치밀한 묘사법이 돋보이며, 화기를 통해 제작연대와 봉안장소, 제작 화승(畵僧) 등을 알려 주고 있다는 점에 조선 후기 불화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오대산 불량계원수복문

오대산 불량계원수복문

13.3 Km    3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는 중대 적멸보궁과 관련하여 작성시기가 다른 2종의 불량문이 소장되어 있는데,『오대산중대불량계원수복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4호로 지정된『오대산중대불량문』과 함께 전승되어 온 또 하나의 문건이다.
오대산중대불량계원수복문』의 앞부분은 1825년 서대에 소속되어 있던 논을 중대로 영원히 옮기면서 그 상세한 부동산 목록을 작성한 문건이다.
이어서 취봉(鷲峯) ․ 민현(愍玹)이 쓴 「오대산적멸보궁불량연기」가 있는데, 모연(募緣)의 의의를 강조한 글이다. 그 내용은 부처의 법신이 상주하는 적멸보궁이 점차 쇠락하자 본사의 화주 영담 장로가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을 보고 그의 문인 신운등이 앞장서서 권선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뒷부분에는 이와 같이 취지에 동참한 인근 각지의 사찰과 소속 승려들의 명단을 수록하였다.
겉장은 황색 표지로, 표지에는 ‘중대불량계원수복문’이라고 필서하였다.「오대산적멸보궁불량연기」를 쓴 날짜가 ‘도광오년을유육월상한’으로 되어 있어 도광 5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주단변과 계선을 검은색으로 그렸고, 반곽 6행에 글자 수는 12자 내외로 불규칙하다. 모두 18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반엽(半葉) 41.0㎝×29.7㎝, 반곽 31.7㎝×25.4㎝이다.
이 책은 오대산 신앙의 중심인 중대 적멸보궁의 관리를 위해 사찰 내에서도 암자와 암자 사이에 부속 부동산을 옮겼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당시 적멸보궁의 세력권을 추정할 수 있는 문건이며, 또한 각 사찰에 소속되어 있는 승려들의 명단을 실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강원도 내 사찰의 현황 등을 살 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평창)

월정사 성보박물관(평창)

13.3 Km    654     2024-06-11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강원 평창군 월정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성보박물관은 1999년 10월 개관하여 2000년 7월 제1종 불교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한 후 월정사와 강원 남부의 60여 개의 사찰의 성보들을 보존, 전시, 연구에 힘쓰고 있다. 현재 박물관에는 국보인 상원사중창권선문과 1970년 국보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의 해체, 보수시에 발견된 총 12점의 사리구와 1984년도에 발견된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의 복장유물 세조어의를 비롯한 총 23점 보물로 일괄 지정하여 보존, 전시되고 있다.

후불탱화 및 복장유물

후불탱화 및 복장유물

13.4 Km    1     2023-07-01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82

1868년(고종 5)에 제작되어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필선과 구도, 본존과 보살상의 얼굴모습, 산처럼 높이 솟아 있는 육계와 계주의 표현, 전체의 색조가 붉은 색과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점 등 19세기 중엽 이후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갖추고있으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작품으로 그 보존가치가 크다.
이 탱화는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보덕사의 사성전에 봉안되어 있던 것인데, 1998년 9월 2일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중에 있다. 화기(畵記)와 복장주머니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을 통해 1868년(고종 5) 자우(慈雨), 창우(敞遇), 창택(敞澤) 등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에는 커다란 불좌상(佛坐像)이 있고 그 좌우에는 보살입상(菩薩立像)이 배치된 후불탱화(後佛幀畵)이다. 중앙의 본존(本尊)은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고, 왼손은 발목 위에서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다. 본존은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높고 뾰족하게 솟아 있으며, 커다란 정상계주와 반달형의 중심계주가 뚜렷하다.
본존 앞에는 오른쪽에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普賢童子)가, 왼쪽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文殊童子)가 있다. 본존의 좌우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쓴 보살입상이 꽃가지를 들고 서있고, 그 뒤로는 10대제자가 좌우에 각 5구(軀)씩 배치되어 있다.
이 불화는 조성기를 통하여 정확한 제작연도와 작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지극히 양호한 작품이다. 또한 필선이나 구도, 본존 및 보살상의 얼굴모습, 그리고 산처럼 높이 솟아 있는 육계나 계주(계珠)의 표현, 아울러 전체의 색조가 붉은 색과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점 등은 19세기 중엽 이후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복장유물로 원문(願文)은 1868년(同治 7년, 고종 5년) 탱화를 조성하면서 발원하는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기타 복장유물로는 다라니 2매와 후령통 1점 등이 있다.
《복장유물》
복장유물은 이 탱화의 상단에 걸려 있던 복장주머니에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원문(願文) 1매, 후령통(喉鈴筒) 등 《조상경(造像經)》의 「제불복장단의식(諸佛腹藏壇儀式)」에서 밝히고 있는 품목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원문은 1868년(同治 7년, 고종 5년)에 탱화를 조성하면서 발원하는 내용을 기록하였는데, 화기와 비슷한 내용이다. 복장주머니(腹藏囊)는 탱화의 상단에 본존(本尊)을 중심으로 좌우에 하나씩 2개가 걸려 있는데 삼산형(三山形)의 상부와 타원형의 하부 등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령통(가로 11㎝, 세로 3.3㎝, 높이 15㎝)은 사각형으로 종이로 만들었는데 위아래에한 글자씩 붉은 범자(梵字)를 썼고 안에는 5색(紅, 黃, 白, 靑, 綠)의 종이로 싼 오색의 실이 들어 있다.
그 외에도 후령통을 쌌던 보자기(黃梢幅子), 팔엽대홍련주(八葉大紅蓮呪), 천원(天圓), 지방(地方, 금강을 나열한 그림), 범자로쓰여진 진언(眞言) 2매(26×21㎝, 19.8×19.8㎝)와 오륜종자(五輪種子), 오방경(五方鏡), 범자를 한 글자씩 적은 작은 종이 등이 남아 있어 조상경(造像經)의 제불복장단의식(諸佛腹藏壇儀式)에서 언급된 의불화 복장의 일체 유물들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