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Km 2025-11-03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054-870-6237
청송사과축제는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지역 대표 축제이다. 2025년 축제는 ‘청송~ 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행사이다. 축제에서는 사과 풍선 속 황금사과를 찾는 ‘황금사과를 찾아라’, 사과 선별을 통해 로또 번호를 추첨하는 ‘도전-사과 선별 로또’, 만보기를 활용한 ‘꿀잼-사과난타’ 등 다양한 현장 참여형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와 함께 청송사과 직거래 장터, 지역 농특산물 판매장, 문화공연이 함께 구성되어 있어 방문객이 청송사과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축제이다.
12.6Km 2025-09-09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조선 세종 10년(1428) 군수 하담이 건축한 객사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한 곳이다. 정청에서 임금님의 전폐를 모시고 부사가 향궐망배하던 곳이며, 청송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건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용도가 변경되고 서익사와 정청이 철거된 이후 오랫동안 제 모습을 잃었다가 2000년부터 시작된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으로 제 모습을 찾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이 객사는 중당을 가운데 두고 좌, 우에 양익사가 배치되어 있는 앞면 6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로 2011년 복원되었다. (출처 : 청송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12.6Km 2025-09-09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세종 10년(1428년)에 군수 하담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소헌왕후의 8 왕자가 어머니를 위해 각 2칸씩 건축하였다고 하며 화재로 인하여 1688년에 중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으로 보물이다. 맞은편 보광산에 있는 심홍부(청송 심 씨 시조) 묘소의 재각이며 장마철 용전천의 범람으로 묘소로 갈 수 없을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찬경루란 누각명은 군수 하담의 청을 받은 관찰사 홍여방이 순시 때 지은 것으로 누각에 올라 심 씨 시조묘를 보니 소헌왕후를 배출한 경사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12.6Km 2025-09-09
경상북도 청송군 금월로 269 소헌공원
소헌공원은 찬경루, 운봉관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각종 음악회, 행사가 펼쳐지는 곳이다. 찬경루는 청송지역 객사의 누각이며, 운봉관은 중앙에서 파견된 외국의 사신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한 객사이다. 공원 명칭은 2010년 군민과 출향인을 대상으로 공모 절차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과정 및 군정조정위원회를 거쳐, '소헌공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공원 명칭의 유래는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이다. (출처: 청송군청 문화관광과)
12.7Km 2025-12-31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영양 남씨의 무덤 옆에 위치한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1580년 경 심어진 것으로, 나이는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 8.0m, 가슴높이 둘레 1.8~3.8m이다. 줄기는 지면에서 1m 정도 올라가서 네 개로 갈라졌으며, 나무의 키는 비록 작으나 밑둘레가 굵고, 가지가 넓게 뻗어 자라고 있다.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무덤 옆에 심어져서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12.7Km 2025-09-09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청송 용전천 강변 기암괴석 절벽을 주춧돌 삼아 세워진 망미정은 100여 년 전인 1899년 청송부사 장승원이 건립한 정자로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을 지닌 조선시대 정자이다. 현비암과 조화를 이뤄 형언할 수 없는 절경과 절벽 밑에는 수심 3m의 소가 사계절 마르지 않아 보는 이들이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우송당은 300여 년 전 윤두석 선생의 유상지소이던 곳을 1688년에 그의 손자 윤상영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당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망미정을 마주 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2.8Km 2025-10-29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59-30
청송향교는 1426년(세종 8)에 청송지군사로 재임 중이던 정지아가 굴동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수차의 국난으로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에 부임한 이영도가 재임 5년간 국동에 대성전을 중창하였으며, 1629년(인조 7)에 부사 이구징이 재임 3년간 동·서무, 강당, 주사를 보축·중수하였다가 16936년(숙종 19)에 부임한 부사 이문징이 교궁의 지세가 맞지 않는다 하여 임 4년간에 현 위치인 방광산하 월막동으로 대성전 및 부수 건물을 이건 하였다. 이처럼 많은 건축적 변화를 가지고 있는 향교이다. 대성전은 상부가구나 살미의 모습에서 1600~1700년대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성문은 건축 년대는 알 수 없고 작은 규모이지만 구조적으로 세밀하게 배려되어 있으며 특색 있는 모습으로 건축적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향교 건물의 구성은 배향공간인 대성전을 중심으로 앞쪽 좌·우로 동·서무가 있고, 우측으로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좌우로 동·서재가 있으며, 입구에 청아루가 각각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정위로 하여, 그의 학통을 계승한 중국 5성과 송조 2현 및 동국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상정일에 지역 유림들이 모여 이곳에서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12.9Km 2025-03-19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67-11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에 있는 청송포교당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인 은해사의 청송지역 포교당이다. 원래 경허선사가 주석했던 자리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1936년에 청송 읍내의 신도들이 마음을 모아 세운 사찰이며, 창건 이후 별다른 사적은 전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을 딛고 청송 지역민의 포교를 위해 군법회며 불자들을 모아 불심을 펼치는 데 노력하는 등 지역주민을 위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청송포교당의 시설로는 대웅전, 포교당, 공덕비가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신도 수는 200여 명 가량이다. 1990년의 조사에서도 신도 수가 200여 명이었는데, 청송군의 기타 종교와 달리 현재까지 그 신도 수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청송 지역 포교당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13.3Km 2025-10-28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315
국내 최고의 온천 수질을 자랑하는 청송 주왕산 관광호텔에서 운영하는 솔기온천은 예로부터 십장생의 하나인 소나무의 기운이 서린 온천수라는 뜻이다. 온천수는 pH9.58의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천으로서 전국 최고의 수질이라는 것이 한국자원연구소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강온천수로 피부미용은 물론 신경통, 류마티스성 질환, 근육통, 피부질환, 노화 방지와 현대인의 만성 질병인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 해소에 효과가 있다. 지하 710미터에서 용출되는 100% 온천수를 이용한 온탕, 열탕, 냉탕, 마사지탕, 사우나실, 휴게실과 호텔 조식과 중식 상설 뷔페식당도 이용할 수 있다. 인근 주왕산국립공원, 하회마을, 도산서원, 안동댐, 임하댐, 영덕 해상공원의 일출, 영양 수비계곡 등과 연계해 관광해도 좋다.
13.4Km 2025-09-15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청송로 2585-4
청송 후송당 고택은 1920년 무렵 후송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하였다. 고택은 ㅡ자형 안채와 ㄴ자형 중문간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ㄷ자 모양이다. 안채는 오른쪽에 있는 부엌을 제외한 전면에 툇마루를 만들었으며, 네모기둥을 세운 5량가(한식 건물에서 도리가 다섯 개가 있는 지붕)의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았다. 종도리(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밑면에 ‘단기사천이백팔십년 상량(檀紀四千二百八十年上樑)’이란 기록이 있다는 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로 본다면 고택은 화재로 불타서 없어진 것을 해방 후 1974년에 다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로 앞면 튓기둥만은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후송헌(后松軒)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안채의 앞에 위치한 중문간채는 대청과 좌측의 사랑방이 다 같이 ㄴ자형을 이루어 사랑채와 함께 ㄷ자로 내정을 에워싸고 있다. 내정으로 출입하는 중문을 비롯하여 마구간, 방앗간, 하인들이 거처하던 방, 부엌 등이 있다. 고택 건립연대는 오래되지 않으나 5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전통한옥이 변천해 온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배치 관계가 좋고 비교적 간소한 외관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