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Km 2022-12-27
경상북도 경주시 남간안길 5-10
010-3570-1950
월암재는 신라 천년의 정기가 서려있는 남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호 장군의 재실을 고쳐 사용하고 있는 고택이다. 건물 뒤로는 솔숲이 있고, 대청에서 밖을 보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신라 최초 왕궁터인 창림사지와 남산이 보입니다. 경주의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된 월정교에서 삼릉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 있다.
10.6Km 2024-10-22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雁)과 오리 압(鴨)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렀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고,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 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보상화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다.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10.6Km 2024-09-26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 816
경주 남산 서쪽에 있는 포석정은 왕이 술을 들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별궁의 하나였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마른 전복 모양의 석구만 남아 있으며 그 면적은 7,432㎡ 이다. 조성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규모는 폭이 약 35㎝, 깊이 평균 26㎝, 전체 길이가 약 10m이다. 포석정은 중국 고대 강가에서 초혼제를 지내고 악귀를 쫓는 행사의 하나인 유상곡수연에서 유래하였다. 353년 중국의 왕희지가 쓴 난정서문에 보면 맑은 시냇물을 아홉 구비로 돌아 흐르게 하여 흐르는 물속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게 하되 술잔이 아홉 구비를 다 지날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술 3잔을 마시게 하였다. 유상곡수를 즐기는 주위는 높고 험한 산이 있고, 숲과 대나무숲이 있으며 옆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한다. 이에 신라에서도 험한 남산 봉우리을 뒤로 하고 죽림과 송림이 울창하고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계곡에 포석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원래는 남산계곡에서 흘러 들어오는 입구에 거북 모양의 큰 돌이 있었고, 그 입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고 삼국유사에 헌강왕이 이곳에 와서 남산 신의 춤을 따라해 어무상심무를 만들었다 한다. 또한 이곳은 인간의 마음을 수양하고 화랑이 정신을 도야하며 시문을 짓고 속세를 떠나 유정을 느끼던 아름다운 장소였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며 놀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신라 천 년 역사의 치욕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화랑세기필사본에서 포석정을 포석사(鮑石社)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1998년 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에 규모가 큰 건물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제기류도 출토되어 포석정이 연회를 즐기던 곳이 아니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장소였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입구 포석정지 방문자센터에서는 포석정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형과 영상물을 상영한다.
10.6Km 2023-08-09
신라문화의 보물 같은 결정체를 보는 여행이다. 경주 여행에 빼 놓을 수 없는 포석정의 오묘한 물흐름 구조의 아름다움과 불국사, 석굴암, 인공 석굴사원인 골굴암의 고유함까지 놓치지 말자. 신라의 역사 과학관에서는 우리 문화재의 과학적 뿌리를 살펴볼 수 있으니 빠뜨릴 수 없다.
10.6Km 2023-11-01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경주시 남산 기슭 내남면 용장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불상이다. 조각솜씨가 뛰어나며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운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10.6Km 2023-11-28
경상북도 경주시 임해로 64-19
황룡사는 6세기 신라시대 때 만들어져 고려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사찰로 지금은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터만 남아있다. 면적 8,800평 규모에 불국사의 8배나 되는 대형 사찰로 추정된다. 왕명으로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566년에 주요 전당들이 완성되었고, 금당은 584년(진평왕 6)에 완성되었다. 선덕여왕 14년(645년) 탑의 건조까지 모두 완성된 황룡사는 신라의 호국 신앙의 중심지였다. 황룡사 경내에는 신라 보물 중 하나인 황룡사 구층 목탑이 있었으며 이는 당나라 유학 후 돌아온 승려 자장대사의 건의로 백제의 아비지에 의해 3년 만에 완성된 신라의 상징물이었다. 현재 구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에는 탑을 지탱해 주었던 중앙 기둥 주춧돌인 심초석이 남아 있다. 이 절은 신라 왕궁 월성의 동쪽에 있었는데, 그 창건 기록에 따르면 진흥왕이 새로운 궁을 월성 동쪽 낮은 지대에 건립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왕이 새로운 궁 건립을 중지하고 절로 만들게 하여 황룡사라는 사명을 내렸다고 한다. 국가적인 사찰이었기 때문에 역대 국왕의 거동도 잦았고 신라 국찰 중 제일의 자리를 지켰다. 신라 멸망 후에도 고려 왕조에 이어져 깊은 숭상과 보호를 받았으며 탑의 보수를 위해 목재까지 제공받았다. 그러나 1238년(고종 25) 몽골군의 침입으로 탑은 물론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졌다. 1969년 강당지를 발굴조사하여 금당, 강당, 탑지의 초석을 발굴했고, 1976년 3월부터 8년간의 발굴 작업에서 독특한 가람배치인 일탑 삼금당식으로 밝혀졌으며,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단을 비롯한 건물 하부구조는 확인되었으나, 상부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아 전체적인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64개 주춧돌로 된 기단부만 복원하였다. 황룡사지 터 옆에는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 영상 시청각실,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 역사전시실 등으로 구성된 황룡사지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있으며 1층에는 황룡사 구층 목탑을 10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모형탑이 전시되어 있다.
10.6Km 2024-08-05
경상북도 경주시 임해로 64-19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황룡사지의 바로 옆에 건립된 전시관이다. 황룡사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복원에 대한 염원을 담은 곳으로 황룡사지의 연구와 발굴조사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복제하고 유적을 재현 및 전시하여 신라시대 호국사찰의 장엄함을 실제로 느껴볼 수 있다. 내부에는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 영상 시청각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 역사전시실 등으로 이루어져 졌다. 1층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을 10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모형탑도 전시되어 있다. 모형탑 전시실 옆에는 황룡사지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로비 카페가 있다.
10.6Km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신라 제6대 지마왕(재위 112~13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지마왕은 신라 5대 파사왕의 아들로 태어나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능은 포석정에 200m 떨어진 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분은 밑둘레 38m, 높이 3.4m 면적은 9,488㎡로 크지 않은 규모로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덤의 입지조건이나 봉분의 형태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때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경사를 이용하여 높은 곳에 안치하였으며, 아무 표지가 없고 능 앞에 혼유석이 있으나,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10.6Km 2023-02-16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692-25 삼불사
삼불사는 경북 경주 배동에 자리 잡고 있다. 사찰에는 대웅전, 산신각, 보물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입상이 있다.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입상은 삼국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며,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석상과 석재들을 1923년 삼불사가 있는 자리에 모아 세웠다. 사찰은 경주IC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주변에는 동궁과월지, 첨성대, 국립경주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10.6Km 2023-12-15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목실길 84-5
054-773-8866
경주 천북면 물천리에 위치한 다유(茶由)는 여행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유(茶由)에서 정성이 가득 담긴 웰빙 음식인 채식요리(채과밥, 콩고기밥)를 맛보고 전통차류도 음미할 수 있다.